근대 건축물 수난 ‘역사’가 사라진다

  • 입력 2005년 12월 12일 02시 55분


한국 근대사의 흔적을 간직한 건축물들이 잇달아 철거되고 있다.

1923년 국내 최초로 증권 거래가 이뤄졌던 서울 중구 명동의 옛 대한증권거래소가 올해 9월 철거된 데 이어 서울 중구 초동의 스카라극장 건물도 최근 철거됐다.

1935년 약초동보극장이란 이름으로 문을 연 스카라극장은 반원형 현관이 앞쪽으로 튀어나온 독특한 외관을 지닌 20세기 초반의 모더니즘 양식 건물로 평가받아 왔다. 1990년대 이후 다른 극장들이 사라지거나 멀티플렉스 영화관으로 개조됐지만 이 극장만은 70년 전 개관 당시의 원형을 그대로 유지해 왔다.

이에 앞서 2003년에도 서울 종로구 부암동의 소설가 현진건 고택과 서울 연세대의 연합신학대학원 건물이 철거된 바 있다.

머지않아 소중한 역사의 자취로 남을 이들 건축물이 왜 이렇게 잇달아 사라지는 것일까. 근대 건축물을 보존하기 위한 제도에는 어떤 허점이 있는 것일까.

▽근대 건축물 왜 보존해야 하나=현재 철거되고 있는 건축물은 대개 20세기 전반에 지어진 것들로, 개화기∼일제강점기의 역사적 문화적 가치를 갖고 있다. 그러나 이들 건물이 지금 당장 국가 또는 지방문화재로 지정되기 어렵다는 점에서 문제가 발생한다. 국보 보물 등으로 지정되려면 관행상 100년 정도는 지나야 하지만 이들 건물은 이에 비해 다소 연륜이 짧은 상황.

하지만 개발이라는 명분 아래 근대 건축물을 과도하게 헐어버리면 결과적으로 20세기 전반 한국 도시 건축의 흔적이 사라져 도시문화사에 심각한 공백이 생길 수밖에 없다.

▽현행 등록문화재 제도의 문제점=문화재청은 근대 건축물을 보존하기 위해 2001년 등록문화재 제도를 도입했다. 보존 가치가 있는 건축물을 ‘근대문화재’로 등록하는 게 이 제도의 요지다. 곧바로 국가 또는 지방문화재로 지정할 경우 발생하는 재산권 침해를 최소화하면서 무분별한 철거를 막겠다는 취지에서 고안됐다.

그러나 이 제도는 소유주에게 보존을 권고하는 수준일 뿐 법적인 구속력이 없다. ‘근대문화재’로 등록할 경우, 세금 혜택과 건물 인접 공간에 대한 용적률 및 건폐율 완화 등의 인센티브를 주는 것에 그친다. 이것이 바로 등록문화재 제도의 맹점.

따라서 근대 건축물을 보존하기 위해선 우선 이 제도부터 바꿔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문화재청의 한 관계자는 “2001년 당시 제도의 실질적인 실효성에 대해 미처 생각하지 못했기 때문에 서둘러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고 말했다.

▽어떻게 바꿔야 할까=전문가들이 제시하는 대안은 대체로 △등록문화재 제도를 없애고 근대 건축물을 엄선해 가치 있는 것은 국가 또는 지방문화재로 지정하는 방안 △등록 문화재에 등급을 부여해 등급이 높은 것에는 인센티브를 더욱 확대하는 방안 등이다.

근대 건축물 보존운동을 벌이고 있는 강찬석 문화유산연대 집행위원은 고도(古都) 내에서의 ‘건물 철거 허가제’를 제안했다. 그는 “영국 런던에서처럼 건축 문화재 전문가들로 구성된 철거심의위원회를 만들어 건물 철거 여부를 엄격히 심사하면 무분별한 훼손을 막을 수 있을 것”이라고 제안했다.

문화재청의 차순대 근대문화재과장은 “내년 초 공청회를 여는 등 제도 개선을 위해 다양한 방안을 논의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광표 기자 kp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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