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이 9단은 2일 생애 처음으로 골프장에 나갔다. 이 9단은 이날 양재호 9단, 유창혁 9단 등과 함께 강원도의 한 골프장에서 샷을 날렸다. 최철한 9단에게 GS칼텍스배에서 2-3으로 대역전패한 다음 날이었지만 그의 얼굴에는 그늘이 없었다. 이 9단은 그동안 폭주하는 대국으로 연습을 하지 못해 이날 7번 아이언만으로 18홀을 돌았다.
이 9단이 변하고 있다. 조용히 눈을 내리깔고 ‘돌부처’처럼 승부에만 몰두하던 그의 모습을 기억하는 이들에겐 놀라운 일이다.
그가 바둑 외의 세상사에 관심을 쏟는 조짐은 2년여 전부터 나타나기 시작했지만 최근 들어 더욱 심해졌다는 게 주변의 얘기다. 그는 지난해 1월 중국 윈난 성 다리(大理)에서 열린 국수전 도전 1국이 끝난 뒤 인터뷰에서 “세상을 알고 싶다”고 말했다.
골프는 일본에서 활약하는 유시훈 9단과의 약속 때문에 배우기 시작했다. 골프를 즐기는 유 9단이 이 9단에게 “골프를 배워 라운딩하자”고 제안했다. 한번 약속한 것은 꼭 지키는 이 9단은 지난해 여름부터 골프 연습장을 찾았다.
이 9단이 요즘 들어 종종 자청해 술을 마시는 것도 사람들과 얘기하는 시간을 갖는 게 반드시 필요하다고 느꼈기 때문인 듯하다. 그가 자신의 팬클럽인 ‘두터움의 미학’ 회원들과의 2차 술자리를 마다하지 않고 어울리는 것도 그런 맥락이다.
이 9단의 올해 성적은 좋지 않다. 올해 그의 승률은 67.6%(48승 23패). 입단 후 평균 승률 75%를 유지해 온 그로서는 최악의 성적을 거둔 한 해가 될 듯하다.
물론 이세돌 최철한 박영훈 9단의 기량이 이 9단 못지않게 성장했고 이 9단의 집중력이 30대에 접어들어 점차 떨어지고 있는 점도 부진의 요인으로 꼽힌다. 그러나 바둑계에선 세상사에 대한 이 9단의 관심이 부진에 한몫하고 있다는 해석도 없지 않다.
이 9단의 바둑은 공격적으로 변하고 있다. 그는 예전에 두터움을 바탕으로 한 끝내기 바둑으로 중요한 승리를 거뒀다. 그러나 이젠 모험이 가득한 전투의 세계로 스스럼없이 뛰어든다. 그것이 자신의 발목을 잡을 줄 알면서도…. 한 기사는 “이 9단은 이기는 바둑보다 즐기는 바둑을 두려는 것 같다”며 “재미있는 승부를 하려면 인생부터 즐겨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현대의 전설적 기성인 우칭위안(吳淸源) 9단은 ‘바둑은 조화’라고 했다. 지금까지 바둑에만 몰두했던 이 9단이 이젠 인생과 바둑의 조화를 이루려고 한다. 세상사에 대한 관심이 승률을 조금 떨어뜨릴지 모르지만 이 9단과 그의 바둑은 더욱 멋있어질 것이다.
서정보 기자 suhchoi@donga.com
구독
구독
구독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