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들 얘기로는 신혼 때는 그렇게 좋다는데…. 절망스러운 건 남편이 이런 상황을 문제로 생각하지 않는다는 거예요. 연애할 때 미리 알아봤어야 하는 건데….”
김 씨와 같은 위기의 기혼 여성이 적지 않다. 3일 서울 중앙대에서 열린 ‘2005년 한국여성심리학회 동계 학술대회’에서 대구가톨릭대 심리학과 성한기 교수가 발표한 ‘기혼 여성의 성 가치관’에 따르면 기혼 여성 5명 가운데 1명 이상이 ‘위기의 여성’이다.
성 교수가 조사한 백화점 문화센터 수강생, 교사, 은행원, 전업주부 등 452명의 평균연령은 38.4세. 이들 가운데 16.8%는 ‘이혼이나 별거에 대한 생각이 최근 3년간 내 머릿속에서 맴돌고 있다’고 응답했다. 7.1%는 ‘남편과 이혼하고 싶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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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보와 SK커뮤니케이션즈의 메신저 서비스 네이트온이 기혼 여성 1207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도 ‘마지못해 살고 있다’는 응답이 16%, ‘이혼을 고려할 수 있다’가 3%였다.
위기의 원인 1위는 배우자의 성격(35%), 2위는 시댁과의 갈등(29%)이었다. ‘부부 성관계 불만 지속’은 11%로 꼴찌지만 전문가의 해석은 다르다.
이윤수(李倫洙) 한국성과학연구소 고문은 “흔히 성격 차로 헤어진다고 말하지만 알고 보면 그중 3분의 1이 성관계의 격차”라고 말했다. 시댁과의 갈등도 부부 생활이 원만하지 못할 때 표면화된다고 진단하는 전문가도 있다.
‘위기의 주부’는 일탈을 꿈꾼다. 결혼 13년째인 김애영(가명·43) 씨. 그는 매주 수요일 아침 인터넷 등산동호회에서 알게 된 애인을 만난다. 그는 “일주일에 한 번은 그 사람을 만나고 나머지 시간에는 남편과 아이들(중 2년, 초등 6년)에게 최선을 다한다”면서 “남편과 헤어질 생각은 없다”고 말했다.
성 교수의 논문에 따르면 여성들의 외도 이유는 ‘남편에게 싫증을 느껴서’가 37.8%로 가장 많았다. 이어 ‘술 마시고 우발적으로’(22.2%), ‘남자의 유혹에 넘어가서’(13.3%) 등의 순이었다.
결혼 10년차인 원순희(가명·40) 씨도 마찬가지. 원 씨는 중소기업 사장인 남편 덕에 경제적 여유가 있는 데다 20대 못지않은 젊음을 유지하고 있어 남들의 부러움을 사고 있지만 성생활에 불만을 느끼고 있다.
“새벽에 나간 남편은 술에 절어 밤 12시를 넘겨 들어오기 일쑤예요. 얼마 전 친구가 괜찮은 남자를 소개해 주겠다고 했는데 고민 중이에요.”
외도 상대를 만나는 경로는 ‘직장이나 동네’(22.5%), ‘모임에서 우연히’(20.0%), ‘친구나 동료의 소개’(17.5%), ‘인터넷 채팅이나 동호회’(15.0%) 등 다양했다.
부부 클리닉 상담자들은 “요즘은 불륜을 배우자에게 들켰다 해도 서로 모른 척하는 경우가 많아졌다”면서 “불륜을 소재로 한 TV 드라마도 주부들의 외도에 대한 인식을 바꿔 놓았다”고 지적했다.
연세신경정신과 부부 클리닉 박묵희(朴默熙) 원장은 “특히 요즘 30대 이하 기혼 여성에게 부부 관계는 기본권이자 ‘삶의 질’”이라며 “아내는 성적인 문제에 대해 남편에게 분명히 얘기하고 설득해야 한다”고 말했다.
기혼 여성들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하는 부부 관계 빈도는 얼마나 될까. 본보와 네이트온 공동조사 결과에 따르면 연령대별로 차이가 있지만 전체적으로 월 8회 이상이 39%로 가장 많았고 월 5∼7회가 28%로 주 1회 이상이 67%였다. 월 2∼4회는 32%, 월 1회 이하는 1%였다.
배극인 기자 bae2150@donga.com
신수정 기자 crystal@donga.com
■ 전문가들이 보는 부부갈등 "성격 차이" 알고보면 "性격차"
“성격이 달라서….”
임상심리학계 전문가들은 부부의 성격차는 ‘허상’이라고 잘라 말한다. 많은 사람이 성적 갈등을 성격차로 돌린다는 것.
송한두(가명·36) 씨는 결혼 5개월 만에 아내(31)에게 이끌려 부부 클리닉을 찾았다.
“남편은 이중인격자다. 결혼 전에 했던 약속을 어기기 일쑤고 대화도 통하지 않는다.”
“나는 노력하고 있는데도 아내가 일방적으로 몰아붙인다.”
이 부부는 분노 처리 방식, 성 정체감 등 다면적 인성검사(MMPI)를 받았다. 결과는 이들의 말과 달랐다. 이들의 성격은 쌍둥이처럼 비슷했다. 갈등의 한 원인은 성관계에 대한 남편의 소극성이었다.
부부 클리닉 ‘후’의 김선희(金善姬) 수석 컨설턴트는 “많은 부부가 기대가 좌절되면서 생기는 분노를 성격차로 돌리고 있다”면서 “위기의 원인을 정확히 보고 문제를 해결하려는 노력이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결혼 5년차에 부부 클리닉을 찾은 이갑수(가명·32) 씨 부부는 위기를 기회로 반전시킨 사례.
그의 아내는 우울증 증세가 있었다. 시댁과 사이가 안 좋은 데다 남편은 ‘돌부처’ 같고 아내의 성적 욕구에 무관심했다. 둘은 모두 부모의 불화와 무관심 속에서 자란 공통점이 있었다. 성장 과정에서 남편은 주변 사람을 멀리해 내성적으로, 아내는 주변 사람의 관심을 받기 위해 적극적으로 변했다.
상담을 마친 부부는 서로 성격이 달라진 이유를 이해하고 부부 관계도 자주 갖기로 했다.
배극인 기자 bae2150@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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