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갈피 속의 오늘]1937년 난징대학살 시작

  • 입력 2005년 12월 13일 03시 0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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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를 가르고 내장을 들어내거나 산 채로 벽에 못을 박기도 했다…(중략)…산 채로 매장하기, 거세하기, 신체 장기 도려내기, 산 채로 불태우기, 혀에 쇠갈고리를 걸어 사람을 매달아 놓기….’

중국계 미국인인 아이리스 장이 쓴 ‘난징(南京) 대학살’에 나오는 일본군의 중국 양민 학살 사례들이다. 수만 명의 젊은 남성이 가축처럼 도시 외곽으로 끌려가 한꺼번에 기관총에 희생되거나 총검 훈련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는 기록도 보인다.

모두 10장에 걸쳐 당시의 학살을 생존자와 서양인 목격자들의 증언 등을 토대로 기술하고 있는 이 책을 읽으면 인간의 본성에 대해 깊이 회의하게 된다.

난징 대학살은 1937년 12월 13일 일본군이 중국 난징을 함락한 6주간 벌였던 악마적인 만행이다. 당시 희생자는 26만 명에서 35만 명에 이른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일본은 왜 이런 학살을 저질렀을까. 1937년 여름 루거우차오(蘆溝橋) 사건으로 중일전쟁을 시작한 일본군은 7월 말까지 톈진(天津) 베이징(北京)을 점령했으며 8월부터는 상하이(上海)를 공격했다.

당초 일본군 지휘부는 3개월 안에 중국을 완전 장악할 수 있다고 장담했다. 그러나 얕잡아 보았던 중국군의 저항은 의외로 거셌고 중국군 포병대의 발포에 일본 왕비의 사촌을 포함해 수백 명의 일본군이 전사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일본군이 결국 11월 상하이를 점령하고 12월 초 난징을 포위했을 때는 이미 인간이 아닐 정도로 흉악해져 있었다. 따라서 당시 일본군의 행위는 중국 전역에 겁을 주어 저항을 포기하게 하려는 의도였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문제는 이러한 난징 대학살이 세계사에서 ‘잊혀진 홀로코스트’가 되어 있다는 점. 미국 교과서에는 대부분 이 사건이 빠져 있으며 일본의 많은 정치가와 학자는 난징에서 대학살이 일어났다는 사실 자체를 부인한다.

독일의 경우 역사 시간에 유대인 학살을 의무적으로 가르치도록 되어 있으나 일본에서는 수십 년 동안 교과서에서 이 사건을 언급하지 않다가 최근 들어서야 ‘민간인 희생이 있었다’거나 ‘여러 견해가 있어 오늘날에도 논쟁이 계속되고 있다’는 식으로 흐리고 있다. 일본이 결코 주변국의 진정한 친구가 될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정동우 사회복지전문기자 foru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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