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설 다음에 오는 절기가 동지(冬至)다. 우리 조상들은 예로부터 동지를 ‘작은 설(아세·亞歲)’이라 하여 크게 경사스럽게 생각하고, 붉은 팥죽을 쑤어 절식(節食)으로 나누며 삿된 기운을 물리쳤다. 또 궁중에서는 관상감에서 만들어 올린 달력을 동문지보(同文之寶)란 어새를 찍어 모든 관원에게 나누어 주고 관원들은 다시 이를 친지들에게 돌리는 풍습이 있었다.
증산 상제님(1871∼1909)에게서 종통(宗統)을 전수하신 태모(太母) 고수부(高首婦·1880∼1935) 님께서는 “동지는 일양(一陽)이 시생(始生)이라. 동지 설을 잘 쇠어야 하느니라”(증산도 도전·道典)고 말씀하셨다. 동지를 지나면 낮이 다시금 길어지기 때문에, 우리나라뿐 아니라 서양에서도 동지를 ‘태양이 부활하는 날’로 생각해 신성한 축일로 삼았다.
하지만 요즘 세태는 한 해를 반성하고 새해를 준비하던 동지 미풍이 퇴색해 버리고, 사람들은 들뜬 분위기에 취해 연말연시를 흥청거리며 보내기 일쑤다. 지금도 우리 주변에는 한 끼의 끼니를 걱정하는 이, 지하보도 등에서 칼바람을 맞으며 새우잠을 청하는 이웃이 적지 않다. 또 사회 곳곳에선 개개인의 다양한 요구가 분출하는 가운데 갈등의 골이 깊어 가고 있다.
세상은 점점 버겁고 바쁘게 돌아가지만, 이런 때일수록 이웃을 돌아보는 상생(相生)의 마음이 절실하다. 100여 년 전 증산 상제님께서는 “형제가 환란이 있는데 어찌 구하지 않을 수 있으랴. 사해(四海) 내에는 다 형제니라”(도전 8:93:5)라고 말씀하셨다.
부족한 가운데서도 콩 반쪽을 나누는 게 우리의 인정이었다. 동지팥죽으로 액(厄)을 제하고 희망을 나누는 미풍대로 상생의 마음을 나눈다면, 새해엔 따스한 햇살이 동지의 새 기운처럼 엄동의 세상에 비칠 것이다. 이번 ‘작은 설’은 모두가 이런 희망으로 여는 동지이길 기원한다.
이완영 증산도 서울 신대방도장 수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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