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바람이 몰아치던 14일 오후, 서울 마포구 서교동의 산울림 소극장.
모노드라마 ‘윤석화(사진)의 정순왕후-영영 이별 영 이별’ 공연이 끝난 뒤 일어날 준비를 하던 객석의 관객들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다시 무대를 쳐다봤다. 이미 관객의 박수에 답한 윤석화 씨가 무대에서 퇴장하는 대신 객석을 향해 말문을 열었기 때문.
“이 연극의 막을 올린 후 오늘 처음으로 스태프를 야단쳤습니다. 나름대로 공연장을 덥혀 놓는다고 공연 3시간 전에 난방기를 미리 틀었다가 껐는데 밖이 너무 춥다 보니 연극 보시는 동안 많이 추우셨을 것 같아서요. 웅∼ 하는 소리 때문에 소극장에서는 공연 중에 난방기를 켜 놓을 수가 없거든요. 미리 틀었어야 하는데 이렇게까지 추울 줄은….”
실제로 이날 관객들은 극장 안에서 두툼한 겉옷을 그대로 입고도 몸을 잔뜩 웅크린 채 공연을 관람해야 했다.
“산울림 소극장이 올해 20주년을 맞았습니다. 화려한 대극장들이야 정부 지원도 받고 시설도 좋지만, 소극장들은 (좋은) 난방 시설을 갖추기 힘들 만큼 어렵습니다. 솔직히 오늘 공연 시작하기 전, 추운 날씨 때문에 과연 얼마나 관객들이 와 주실까 걱정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많이들 와주셔서 감사의 인사를 드리고 싶었습니다. 여러분이 바로 어려운 소극장을 지켜 주시는 고마운 분들이십니다.”
떨리는 목소리로 말을 마친 그는 두 손을 가슴께로 가지런히 모은 뒤 관객을 향해 천천히 큰절을 올렸다. 공연시간 1시간 40분 내내 얇은 한복에 신발도 신지 않은 버선발 차림으로 무대에 섰던 윤석화 씨 자신도 춥기는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생각지 못한 큰절을 받은 관객들은 뜨거운 박수와 환호로 답했다. 이날 공연을 본 김현정(32) 씨는 “윤석화 씨가 큰절을 할 때 갑자기 눈물이 핑 돌았다”고 말했다. 연극을 보기 위해 대전에서 올라왔다는 관객 유희순(45) 씨는 “솔직히 오들오들 떨면서 연극을 봤는데 마지막에 윤석화 씨의 인사가 움츠러들었던 몸과 마음을 단숨에 따뜻하게 녹여 줬다”며 감격해했다.
‘23년 만의 강추위’가 며칠째 몰아쳤던 이날, 76석 규모의 산울림 소극장에는 보조석까지 포함해 모두 92명의 관객이 찾아 왔다.
강수진 기자 sjk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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