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가 연말에 700억 원대의 적자를 낼 것이라고 올해 초 자체 예상했던 것과 달리 900억 원대의 흑자를 기록할 것으로 보인다. 전망치와 무려 1600억 원이나 차이가 나는 것. 올해 내내 적자 줄이기에 골몰했던 KBS는 대규모 흑자를 어떻게 줄일 것인가를 놓고 고민에 빠져 있다.
▽흑자 요인=KBS가 대규모 흑자를 내게 된 것은 무엇보다도 국세청에서 900억 원대의 법인세를 돌려받게 된 데 있다. KBS는 올해 낼 예정이던 법인세 366억 원과 과거에 낸 법인세 566억 원 등 932억 원을 이달 말 법원 조정을 통해 돌려받을 것으로 보인다.
KBS 한 관계자는 “현재 법원이 낸 조정안을 검토 중이며 이달 말 수용 여부가 판가름 날 것”이라고 말했다.
KBS 경영진은 최근 이사회에 조정안을 받아들인다는 방침을 보고한 것으로 알려졌다.
KBS는 국세청이 수신료를 방송 용역의 대가로 보고 법인세 등을 부과한 것에 대해 소송을 내 지난해 8월 1심에서 일부 승소했다. 그러나 KBS는 올해 8월 항소심 재판부에 국세청이 기존에 낸 566억 원을 돌려주고 올해 낼 법인세를 안 내는 조건을 받아들여 준다면 소송을 취하하겠다는 의견서를 전달했다. 이 같은 조정안을 국세청이 적극 수용하면서 연내 법인세를 돌려받게 될 가능성이 높아진 것이다.
KBS 경영진은 이미 제작비 삭감 등 잇따른 긴축정책만으로도 올해 64억 원의 흑자를 낼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았다. 이에 따라 흑자 규모는 1000억 원을 넘을 수도 있게 됐다.
▽임시방편 흑자 줄이기=내년 6월 임기가 끝나는 정연주(鄭淵珠) KBS 사장은 올해 적자를 줄이기 위해 총력을 기울여 왔다. 지난해 638억 원의 적자를 낸 데 이어 2년 연속 적자를 낼 경우 연임이 어렵다는 관측이었다.
그러나 최근 과도한 흑자 발생이 예상되자 KBS는 흑자 줄이기에 다급해진 상황이다. 22∼25일 4일 연속으로 긴급 편성된 TV문학관도 그 한 사례. TV문학관은 촬영을 마친 상태에서 제작비의 80%까지를 외주 제작사에 지급했으나 올해 회계에 제작비를 넣지 않기 위해 내년에 방영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흑자 규모가 1000억 원에 육박하자 올해 방영하고 회계 처리를 하기로 했다. 한동안 금지됐던 해외 출장도 최근에는 적극 권장하는 분위기다.
▽왜 흑자가 걱정거리?=대규모 흑자가 날 경우 KBS가 그동안 경영난을 이유로 줄기차게 요구해 온 수신료 인상이나 중간광고 등 TV 광고 확대 주장, 내년에 정부보조금 152억 원을 받는 것이 모두 설득력을 잃게 된다.
적자를 이유로 노조에 임금 동결을 내세웠던 명분도 없어지게 된다. KBS 노조는 타 방송사보다 낮은 임금의 보전 등을 이유로 9%의 인상안을 사측에 제시했지만 협상이 결렬돼 중앙노동위원회에 중재를 신청해 놓은 상태다. 또 단체협약에는 흑자 규모가 700억 원 이상이면 기본급의 160%, 1000억 원 이상이면 200%를 보너스로 지급하게 돼 있다. ‘적자’ 타령을 하다가 직원들끼리 ‘돈 잔치’를 벌일 상황이 된 KBS 경영진으로서는 시청자인 국민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는 것.
KBS 관계자는 “일시적 흑자일 뿐 구조적으로는 적자”라고 해명하며 “올해 법인세를 돌려받을 경우 흑자 규모가 너무 커 국세청에 내년에 돌려 달라고 요청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서정보 기자 suhcho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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