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 노력 없이도 구구단을 외우고 외국어를 술술 말할 수 있다면? 1960년대 당시만 해도 미국인들에게 이런 기대는 결코 몽상만은 아니었다. 제임스 매코넬이라는 과학자가 벌레를 대상으로 ‘기억이 화학적으로 전이될 수 있다’는 실험 결과를 이끌어냈던 것이다. 기억이 화학물질을 통해 분비되는 것이라면 얼마든지 ‘구구단 알약’이나 ‘외국어 혈관주사’도 생각해 봄 직했다.》
매코넬의 실험 대상은 플라나리아였다. 그는 벌레들에게 빛을 쪼인 다음 충격을 주어 마침내 빛만 쬐어도 몸을 뒤틀도록 훈련시켰다. 그리고 그는 훈련된 벌레를 반으로 잘랐다. 편형동물인 플라나리아는 잘라진 조각에서 완전한 벌레가 재생되어 나온다.
놀랍게도 뇌가 있는 앞부분뿐 아니라 뇌가 없는 뒷부분에서 재생된 벌레도 빛에 반응을 보였다. 그리고 더욱 놀라운 것은 훈련받은 벌레를 먹은 훈련받지 않은 벌레도 똑같은 반응을 보였다. 훈련받은 내용은 뇌뿐만 아니라 벌레 전체에 퍼져 있었던 것이다! 여기에 착안해 매코넬은 기억이 화학물질로 저장된다는 가설을 수립했다.
그러나 무슨 영문인지 다른 사람들의 실험에서는 동일한 결과가 나타나지 않았다. 매코넬은 “잘못된 실험 결과는 벌레를 제대로 훈련시키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맞섰다. 고도로 숙련된 전문가만이 올바른 실험 결과를 얻을 수 있다는 주장, 이른바 ‘황금 손’ 논증이다.
이 실험을 둘러싼 진위 논란은 이후 10년을 끌었으나 끝내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흐지부지 잊혀지고 말았다.
과학은 소수의 천재들이 실험실에서 한 치의 실수도 없이 단 한 번에 내놓는 것인가? 과학적 가설이 일단 실험에 의해 검증되면 하나의 확고부동한 이론, 틀림없이 ‘참’인 이론이 탄생하는가?
저자들은 고개를 가로젓는다. 과학사에 나타난 흥미로운 7가지 사례를 들려주며 이런 깔끔한 도식은 오히려 예외적임을 보여 준다. 이들은 ‘과학사회학’이라는 프리즘을 통해 과학사의 이면을 훑으며 과학의 확실성에 덧씌워진 신화를 벗겨 낸다.
저자들이 보기에 과학적 논쟁이 해결되는 방식이 늘 과학적인 것만은 아니었다. 반드시 객관적이고 논리적인 기준에 의해 논쟁이 종식되는 게 아니라 과학자 사회의 알력과 타협, 그리고 권력관계에 영향을 받았다.
오늘날 의문의 여지가 없는 것으로 간주되는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이나 파스퇴르의 세균 이론마저도 그것을 검증한 실험과 관찰들은 논란의 여지가 다분했다.
가설이 있고 다음에 실험이 있고 그 다음에 확증이 있었던 것이 아니라, 그에 앞서 새로운 이론에 ‘동의하기로 동의하기’가 있었기 때문에 상대성이론은 진리로 받아들여졌다. “상대성이론은 우리가 어떠한 과학적 삶을 살아야만 하는지에 대해 과학계가 내린 결정의 결과로 생겨난 진리이다.”
심지어 파스퇴르는 세균배양 실험을 통해 생명은 우연히 생겨난다는 ‘자연발생설’을 패배시키는 과정에서 데이터를 조작했다. 그럼에도 프랑스 과학아카데미는 기꺼이 그의 손을 들어 주었다. 왜? 당시 자연발생설은 진화론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고 믿어졌는데, 프랑스 학계는 진화론에 반대했던 것이다.
“과학의 논쟁에서도 소수의 견해가 패배하는 것은 사실이나 그것이 반드시 타당한 이유 때문만은 아니다. 그저 숫자가 적거나 소수파가 먼저 죽게 되기 때문이다.”
저자들은 과학을 ‘골렘’이라 칭한다. 유대 신화에 나오는 인간의 창조물인 골렘은 야누스의 두 얼굴을 갖고 있다. 원래는 주인을 잘 따르지만 언제라도 미쳐 날뛸 수 있는 위험천만한 존재다.
과학에서 뭔가 잘못되면 과학 공동체는 모든 책임을 과학과 기술 자체의 결함이 아니라 이를 다루는 인간의 실수 탓으로 돌린다. 과학 ‘바깥’에 책임을 전가하는 것이다. 그러나 오류는 과학이론의 핵심에 자리하고 있다는 게 저자들의 결론이다. 과학과 기술 역시 인간의 활동에 불과한 것이다.
뭔가 잘못되는 경우 그것은 피할 수도 있는 인간의 실수를 피하지 못했기 때문이 아니라 인간이 만든 어떠한 과학이론도 완벽할 수 없기 때문이다. 과학과 기술이 완전한 확실성을 제공한다고 추정하는 바로 그 순간, 진리의 저울은 ‘불안한 균형’을 유지하게 되는 것이다.
“과학과 기술은 본질적으로 위험하다. 그러니 과학자들은 약속을 덜해야 한다. 그러면 약속을 더 지킬 수 있을 것이다!”
원제 ‘The Golem’(1993, 1998년).
이기우 문화전문기자 keywo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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