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교통중심 ‘驛’을 다시 본다

  • 입력 2005년 12월 19일 03시 0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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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유곡(지금의 경북 문경 일대)역 관리 책임자였던 찰방이 남긴 ‘유곡록’의 일부. 사진 제공 조병로 교수
조선시대 유곡(지금의 경북 문경 일대)역 관리 책임자였던 찰방이 남긴 ‘유곡록’의 일부. 사진 제공 조병로 교수
‘역(驛)을 알면 조선시대 사회상이 보인다.’

조선시대 교통 및 유통의 중심지였던 역에 관한 연구가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

18세기 말∼19세기 중반 유곡(幽谷·지금의 경북 문경시 일대)역에 관한 사료가 최근 발굴됐고 조선시대 역제사 연구를 집대성한 ‘한국 근세 역제사 연구’도 출간됐다.

고서 수집가가 지난해 대구에서 발견해 경기대의 조병로(한국교통사 전공) 교수에게 연구를 의뢰한 이 사료는 ‘유곡록(幽谷錄)’. 유곡역의 관리 책임자인 찰방(察訪)이 18세기 말 또는 19세기 중반에 기록해 놓은 60쪽 분량의 일지다.

속표지에 ‘정사년(1797년 또는 1857년) 4월 4일 도정(관리들의 성적 평가)에 따라 4월 20일 유곡역 찰방에 부임한 뒤 여러 일을 적어 후에 참고하고자 한다’는 내용이 한문으로 적혀 있다. 조 교수는 “낙관이나 관인이 없는 것으로 보아 참고용으로 적어 놓은 초본(草本)으로 보인다”면서 “3년에 걸친 기록이어서 지방의 역 연구에 귀중한 자료”라고 평가했다.

유곡록에는 역의 운영 방식, 역에서의 관리 및 사신 접대, 역에서의 일상 등이 비교적 자세히 담겨 있다. 특히 역마(驛馬)에 관한 내용이 흥미롭다. 역마는 출장 때문에 역을 거쳐 가는 관리 등을 위해 준비해 놓는 말.

‘이 역은 고개 아래 큰길에 위치해 오가는 사신의 연락이 끊이지 않아 각 역의 인마(人馬)가 길에 오래 서서 대기하는 일이 특히 심하다…역마가 부족해 지난날 이 같은 문제점을 전달했으나 해결되지 않아…’라는 내용처럼, 임진왜란 이후 말이 부족해지면서 생긴 어려움과 폐단에 관한 사례가 풍부하게 들어 있다.

조 교수는 이와 함께 최근 출간한 ‘한국 근세 역제사 연구’에서도 조선 후기 전국 각지의 역에 관해 풍부한 연구 결과를 내놓았다.

그는 “역은 단순히 교통과 유통의 중심지에 그치지 않고 사신 왕래의 거점 역할을 하고 각종 군사 정보를 전달하는 등 중앙과 지방의 커뮤니케이션 기능까지 담당했던 곳이었음이 사료로 확인되고 있다”고 말했다.

이광표 기자 kp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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