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일보가 올해 ‘책 읽는 대한민국’ 시리즈를 한 것은 독서 분위기를 확산시킬 뿐 아니라 책 선택의 고민을 해소해 주려는 목적인 것 같다. 서울대 권장도서 100권에 이어 21세기 신고전 50권, 열아홉 살의 필독서 50권 등 추천된 200권의 책은 하나같이 이 시대의 양서라 할 만하다.
그러나 사실 선택의 문제는 생각보다 그리 심각한 것이 아니다. 식당에 간 사람은 무슨 음식을 고를까라는 문제로 큰 고민에 빠지지 않는다. 수십 년 밥을 먹어온 ‘실력’이 있기 때문이다. 독서 습관이 몸에 밴 사람은 자기가 읽고 싶은 책을 스스로 선택할 실력을 갖고 있다. ‘목적’과 ‘취향’도 책 선택의 강력한 안내자다. 무슨 목적으로 책을 읽는지 이유가 뚜렷하거나 자기 입맛이 분명한 사람은 최소한의 판단 정보만으로도 자신의 필요와 취향에 맞는 책을 고를 줄 안다.
어떤 단기적 목표를 위해 필요한 책을 읽는 이른바 ‘목적성 독서’는 사냥과 흡사하다. 사냥의 경우처럼, 목적성 독서에서는 필요한 정보 얻기, 곧 정보사냥이 목적이다. 물론 이 경우에도 어디에 가장 유용한 정보가 있는지를 찾아내야 한다는 점에서 선택의 문제가 개입된다. 그러나 정보사냥을 위한 안내정보는 신문, 잡지, 인터넷 같은 데서 너무도 손쉽게 얻을 수 있다. 직장 동료, 상사, 친구, 선배, 교수, 해당 분야 전문가들도 좋은 안내자이다. 목적성 독서의 경우 선택정보가 없어 책을 못 보는 일은 없다. 어떤 책 하나를 읽고 나면 그 책 자체가 ‘더 읽을 책’을 안내한다.
어떤 책을 선택하고 어떻게 읽을 것인가라는 방법이 다소 문제가 되는 것은 특정의 정보사냥을 목적으로 하지 않는 독서행위, 곧 ‘비목적성’ 독서의 경우다. 엄밀히 말하면 이 경우에도 ‘마음 가꾸기’라는 목적이 있다. 그러나 마음 가꾸기는 단기적 일시적 행위가 아니라는 점에서 정보사냥과 다르다. 정보사냥은 목표가 달성되면 그만두어도 되는 반면, 마음 가꾸기는 그렇지 않다. 사냥과 달리, 이 경우의 독서 행위는 우리의 정신을 자극하고 마음을 확장하는 일, 곧 ‘혼의 즐거운 춤’ 같은 것이다.
혼을 즐겁게 춤추게 하는 독서에서는 우선 자신이 오랜 기간 관심을 갖고 추적하는 어떤 화두를 갖는 일이 필요하다. 그 화두는 지적인 문제일 수도 있고 지리상의 어떤 나라나 문화, 역사상의 한 시대나 인물, 특정의 작가, 사상가, 사건일 수도 있다. 평생을 두고 추적할 만한 어떤 관심사를 갖는 일은 독서의 습관화를 위한 첩경일 뿐 아니라 유효한 독서를 위한 최선의 방법이다. 독서가 깊어지고 점점 재미가 붙고 정신과 마음의 확장을 경험하게 되는 것도 이런 관심의 지속적 유지를 통해서다. 독서가 날이 갈수록 어떤 ‘수준’에 올라서는 것도 이런 방식의 독서를 통해서다.
독서, 여행, 대화는 마음 가꾸기의 대표적인 세 가지 방법이다. 그런데 독서는 이미 그 자체로 일종의 여행이고 대화라는 점에서 우리가 가장 손쉽게 선택할 수 있는 정신 확장의 방법이다. 여행은 아무 때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고 대화도 그러하다. 여행에는 시간과 돈이 많이 든다. 대화를 위해서는 좋은 대화상대가 곁에 있어야 한다. 그러나 책은 거의 언제나, 아무 때나 떠날 수 있는 여행이고 언제나 시작할 수 있는 대화다. 독서가 진정 귀하고 고마운 데는 이 같은 실용적 이유도 있다.
도정일 경희대 교수·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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