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김범석]가수들이 외면하는 MBC 가요제

  • 입력 2005년 12월 20일 03시 09분


20년 전만 해도 한 해의 마지막 밤은 조용했다. 가족들은 TV 앞에 모여 앉아 MBC 10대 가수 가요제의 ‘최고 인기 가수’ 선정 순간을 숨죽이며 지켜봤다.

그러나 올해 12월 31일에는 이 행사를 TV로 볼 수 없게 됐다. 38년의 전통을 자랑하는MBC 10대 가수 가요제가 취소된 것이다. 선정된 가수 중 ‘SG워너비’, 보아, 윤도현, ‘동방신기’ 등이 각각 해외 프로모션, 새 앨범 준비 등을 이유로 불참을 통보한 것이 직접적인 이유다.

이 중 올해 총 60만 장의 음반 판매를 기록한 3인조 그룹 ‘SG워너비’의 불참 이유는 남달랐다. “데뷔 후 2년간 홍보를 했는데 유독 MBC에만 출연하지 못했다”며 “상을 받을 이유가 없다”고 불참 이유를 밝힌 것. 그간의 섭섭함에 대한 ‘실력행사’인 셈이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방송 출연’은 음반 판매량 상승의 보증수표쯤으로 여겨졌다. 그러나 2002년 이후 히트 음반조차 100만 장은커녕 50만 장 판매도 넘기기 힘들어지면서 음반산업에서 방송의 영향력은 급속도로 약화됐다. 가수와 소속 기획사는 방송가를 기웃거리기보다는 해외무대 등 새 시장 개척에 몰두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연말 가요상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각 방송사는 음악적 완성도보다는 자사 프로그램에 많이 출연하는 가수를 최고 인기 가수로 선정하기도 했다. 시청자들은 “가수상이 아니라 방송사 잔치”라며 공정성을 문제 삼았고 방송사 선정 가요상의 권위는 더 추락했다.

여기에는 가수들의 책임도 컸다. 몇몇 가수는 음반은 1만 장도 팔리지 않았지만 오락 프로그램에 출연해 개인기를 뽐낸 뒤 음반판매 수익의 몇 배를 벌었다는 소문이 공공연하게 나돌곤 한다.

대중 음악평론가들은 가요계를 위해 방송과 관계 없이 음악 자체로만 평가하는 시상식이 만들어져야 한다고 말한다. 47년 전통의 미국 그래미상 시상식이 최고 권위를 인정받는 것은 TV 스타가 아닌 뮤지션에게 상을 주기 때문이다.

‘제39회 MBC 10대 가수 가요제’의 취소는 지상파 방송의 영향력 하락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권위 자체가 추락한 한국 가요계의 현실을 보여 주는 사건이기도 하다.

김범석 문화부 bsis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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