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유민이가 항상 동생들을 챙기고, 힘들어도 내색하지 않고, 부족해도 투정 부리지 않는 모습을 보일 때면 엄마는 대견하고 안쓰럽단다.
유민아, 1998년 8월은 막내 찬중이가 세상에 나온 기쁜 달이었단다. 그러나 한편으로 우리 가족의 머리 위에 먹구름이 드리워지기 시작한 때였지. 아빠는 직장을 잃었고 하루하루 늘어나는 빚 때문에 엄마는 우울증에 걸릴 정도였지.
어린 너희들에게 들려주고 보여 줄 수 있었던 것은 한숨과 눈물뿐이었단다. 세상을 원망하면서 살아가던 고달픈 나날이었지. 그렇지만 엄마 아빠 무릎에 앉아 눈물을 닦아 주던 유민이와 유희가 있었기에 다시 일어설 수 있었단다.
우리 가족은 그때 뒤덮여 버린 먹구름을 걷기 위해 지금까지 싸워 왔지. 엄마는 아빠와 너희들한테 항상 고맙다. 아침에 눈을 뜨면 곁에서 숨쉬는 가족의 체온을 느끼며 행복한 미소를 짓는단다.
천사 같은 딸 유민아, 엄마가 이 편지 한 장으로 어떻게 너에 대한 고마움을 표현할 수 있을까.
아빠 엄마는 마음을 다잡고 함께 일하기 시작했단다. 10여 년을 집에만 있다가 오전 8시부터 오후 11시까지 밖에서 일을 하게 돼 엄마는 힘들고 고단했지. 그때 초등학교 3학년이었던 유민이가 큰 힘이 됐단다. 들어와 보면 어린 유민이가 집안을 깔끔하게 정리해 놨지. 양쪽 팔에 유희와 찬중이를 누이고 잠든 유민이를 보고 엄마는 많이 울었단다. 고아 아닌 고아로 자라는 우리 아이들이 하루빨리 성장하기를 엄마는 매일 기도했단다.
아빠한테도 고맙단다. 할아버지 할머니께 너무나 귀한 장남인 아빠는 좋은 대학을 나와 회사에서 인정받으며 살았지. 그런 아빠가 택시 운전사, 족발 장수 등 그때까지 해보지 않았던 일을 하게 됐단다. 하루아침에 삶이 바뀌긴 했지만 아빠는 항상 성실하고 끈기 있는 모습을 보여 주었어.
유민이가 벌써 중학생이 됐구나. 얼마 전에 담임선생님을 뵈었는데 유민이가 일기장에 ‘비가 오면 엄마가 더 보고 싶다’고 적었다더라. 의젓한 반장 유민이가 왜 이런 글을 썼을까 선생님이 궁금해 했더니, 종일 엄마가 밖에서 일하신 지 오래됐는데 요즘 그런 마음이 든다고 유민이가 얘기했다면서. 선생님이 놀랐고 기특하다고 하시더구나.
유민아, 엄마는 하고 싶은 일이 있어. 먹구름이 완전히 걷히는 그날 우리 가족 모두 1박 2일 짧게라도 여행을 다녀오고 싶어. 아빠 엄마도 너희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고 싶단다.
유민아, 지금까지는 유민이가 아빠 엄마의 후원자였지만, 이제 아빠 엄마가 너를 지키는 버팀목이 되어 줄게. 항상 밝고 건강하게 자라길 바란다. 사랑하는 내 딸아.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엄마가
*편지를 쓴 도갑례(40) 씨는 남편 김용권(43) 씨와의 사이에 두 딸 유민(14) 유희(12) 양과 아들 찬중(8) 군을 두고 있으며 현재 부산 동래구 칠산동에서 남편과 식자재 납품업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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