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자 뿌리읽기]<291>鬼(귀신 귀)

  • 입력 2005년 12월 23일 03시 04분


鬼는 커다란 가면을 쓴 사람을 그렸다. 옛날 역병이 들면 역귀를 몰아내던 곰 가죽에 눈이 넷 달린 커다란 쇠 가면을 덮어쓴 方相氏(방상시)를 연상하게 한다. 이러한 鬼는 재앙이나 역병과 관련된 부정적 의미와 인간이 敬畏(경외)해야 할 인간보다 위대한 존재라는 두 가지 의미를 동시에 가진다. 고대문자에서는 간혹 鬼에 示(제사 시)를 더해 후자처럼 귀신이 제사의 대상임을, 복(칠 복)이나 戈(창 과)를 더해 전자처럼 내몰아야 하는 대상임을 구체화하기도 했다.

먼저, 부정적 의미의 귀신을 의미하는데, i(도깨비 매)는 번쩍번쩍 빛을 발하는(삼·삼) 귀신을, 魁(으뜸 괴)는 귀신에서의 우두머리(泰斗·태두)를, 魔(마귀 마)는 온 정신을 마비시키는(麻·마) 귀신을, j(역귀 허)는 몸과 마음이 병들어 허해지도록(虛·허) 만드는 역병 귀신을, (염,엽)(잠꼬대할 염)은 귀신에 짓눌리거나 가위에 눌려(厭·염) 해대는 잠꼬대를 말한다.

둘째, 鬼는 몰아내야 하는 존재이기도 했지만, 동시에 인간이 敬畏해야 할 ‘위대한’ 존재이기도 했다. 예컨대 嵬(높을 외)는 귀신(鬼)과 산(山·산)처럼 ‘높은 것’을 말했는데, 이후 소리부인 委(맡길 위)가 더해져 魏(높을 위·나라 이름 위)가 된 글자이다.

또 魂(넋 혼)과 魄(넋 백)처럼 鬼는 인간의 조상으로 섬겨야 할, 제사의 대상이기도 했다. 이들은 모두 ‘넋’을 말하지만, 魄은 魂보다 뒤에 등장했다. 즉 고대 중국인들은 육체에서 영혼(魂)이 분리되면 죽게 되고, 분리된 영혼은 땅속에 머문다고 생각했다. 이후 天神(천신)과 地神(지신)의 개념이 형성되면서 魂이 천신에 대응되자 지신에 대응할 魄이 만들어졌다. 그러자 魂은 정신을, 魄은 육체를 관할하는 존재로 여겨졌다.

여기서 재미있는 것은 영혼(魂)과 인간의 혼백(魄)에 모두 鬼가 출현하고 있다는 점이다. 즉 서구의 개념으로 볼 때 가장 성스러워야 하는 영혼과 일종의 잡귀에 불과한 귀신의 자리가 동일하다는 점이다. 이는 칸트적인 최고선과 근본악의 개념을 다시 생각할 수 있게 해 주는 대목이기도 하다.

하영삼 경성대 교수 ysha@ks.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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