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식모’라고 불렸던 이들의 삽화가 곳곳에 나오는 장편소설이다. 박정희 대통령을 시해했던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의 식모 이야기도 나온다. 시해 전날 그가 응접실에서 툴툴거리면서 술을 마시고 있는데 그 식모가 “기분을 돋워주는 것”이라며 차 한 잔을 가져왔다. 그러면서 “아저씨, 물건이 있는 사내라면 모름지기 한번쯤은 투사가 되어야겠죠”라고 말하고는 다음 날 새벽 짐을 싸서 집을 빠져나갔다는 것이다.
물론 역사의 반대편에 자리한 소설이라는 허구 공간에서 벌어진 일이다. 이 소설은 제목 그대로 ‘수상한 식모들’을 다루고 있다. 식모들 가운데 요부 같은 이들의 비밀 결사 비슷한 게 ‘수상한 식모들’이라는 모임이다. 이들의 구호는 “부르주아 집안의 위선적인 행복을 산산조각 내버리자”는 것이다. 4년마다 한 번씩 윤달 마지막 날 한강 근처에서 회합한다. 이들은 원래 연산군 폐위나 동학농민운동 같은 일들에서 물밑의 힘을 발휘했던 ‘호랑아낙’의 후예인데, 이 ‘호랑아낙’조차 단군신화에서 곰에게 패배한 암컷 호랑이의 후손이라고 한다. 역사가 반만년이나 되는 셈이다.
작가는 얼토당토않은 이런 일들을 시치미 딱 떼고 천연덕스럽게, 그러면서 진지하고, 때로는 유머까지 섞는 여유를 부리면서 풀어낸다. 이 작품은 문학동네 소설상의 올해 수상작이 됐는데, 아마 이런 뛰어난 상상력과 큰 배포에 힘입은 듯하다.
![]() |
소설은 과거 ‘수상한 식모들’의 한 사람을 고용했다가 파탄이 난 집안 아들인 열여덟 살 130kg의 고교생 경호의 눈으로 전개된다. 사업 실패로 폐인이 된 아버지는 매일 골방에서 하녀를 밀애 상대로 만드는 ‘하녀 다루기’라는 인터넷 게임을 한다. 경호는 난데없이 귓속에서 생쥐들이 뛰어다니는 소리를 듣고는 경기를 일으키곤 하는데, 옛날의 ‘수상한 식모’ 순애 씨가 어린 경호를 생쥐로 괴롭혔던 일의 잔향(殘響) 때문이다. 경호는 이 고통을 지워버리려고 순애 씨를 찾아가는데 그녀는 ‘수상한 식모들’의 비밀을 누설한 죄로 온몸이 석고처럼 굳어가는 병에 시달리고 있다.
‘억눌린 자의 시각’에서 역사를 재구성해 보려는 이 소설의 시도는 순애 씨의 육신처럼 경직되고 비틀어져 버린 느낌을 준다. 식모로 상징되는 피지배 계급이 정사(正史)의 흐름을 바꿨거나, 그 숨겨진 실체를 벗겨 낸다는 기발하고 역동적인 이야기는 대부분 과거에 일어났을 뿐이다. 현재의 이야기는 아무런 모험도 해낼 수 없는 비만 소년과 반신불수인 순애 씨의 처지에 빗댈 만큼 답보만을 거듭할 뿐이다. 설정은 빛나지만, 이야기가 에스컬레이터에서 제자리걸음을 하는 인상을 주는 것은 이 때문이다.
권기태 기자 kkt@donga.com
구독
구독
구독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