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큐멘터리 감독 켄 번스 씨의 말마따나 미국 권투선수 잭 존슨은 20세기 초반 지구상에서 가장 미움받은 흑인 중 한 명이었다. 인종 차별이 극심했던 시기에 존슨은 모든 차별적 관행에 대해 ‘노’라고 말하며 미국 사회를 들끓게 했다.
가난 탈출을 위해 권투를 시작한 존슨은 ‘무적의 주먹’으로 승승장구하며 1903년 헤비급 세계 챔피언에게 도전장을 냈다. 하지만 당시 챔피언인 제임스 제프리스는 “흑인과 싸울 수 없다”며 이를 거절했다.
기회는 5년 뒤에 왔다. 1908년 12월 26일 호주 시드니에서 열린 헤비급 세계 챔피언 타이틀 매치에서 존슨은 당시 챔피언인 토미 번스를 꺾고 역사상 첫 흑인 챔피언이 된다.
‘흑인 챔피언’은 백인에게 치욕이었다. 존슨은 ‘위대한 백인의 희망’을 되찾는 사명을 띤 숱한 백인 선수들과 싸워야 했다.
존슨의 피부색 때문에 싸우기를 거절했던 전 챔피언 제프리스까지 복귀해 1910년 존슨에게 도전했지만 15라운드에서 KO패를 당하고 만다. 제프리스마저 존슨에게 지자 미국 각지에서 폭동이 일었고 몇몇 주에선 이 경기의 방송을 금지했다.
링 밖에서도 존슨은 백인의 눈엣가시였다. 사치스럽기 짝이 없는 생활도 그렇지만 백인들을 광분하게 한 요인은 그의 백인 애인들이었다. 존슨은 여배우 매 웨스트를 비롯해 백인 여성들과 데이트를 즐겼고 백인 여성과 결혼했다.
1913년 존슨은 백인 여성에게 펜실베이니아 주에서 일리노이 주로 가는 기차표를 끊어 줬다는 이유로 유죄 판결을 받는다. 매춘부가 주 경계를 넘어 여행하는 것을 금지한 법을 위반했다는 혐의였지만 실제로는 그가 백인들을 불편하게 한 데 대한 앙갚음이었다.
판결 직후 해외로 도망친 존슨은 1915년 쿠바의 아바나에서 백인 선수인 제스 윌라드에게 챔피언 타이틀을 빼앗긴다. 존슨이 형량을 덜기 위해 일부러 졌다는 소문이 파다했지만 그는 1920년 미국에 오자마자 체포돼 1년간 복역했다. 출소 후 그의 화려한 경력도 내리막길을 걸었다.
1913년 판결로부터 90여 년이 지난 올해 4월, 미국 상원의원 존 매케인 씨는 조지 W 부시 대통령에게 존슨에 대한 사후사면을 요청하는 법안을 제출했다. ‘용서할 수 없는 흑인’이었던 존슨은 곧 잊혀졌지만 그에 대한 백인 사회의 보복은 ‘부끄러운 과거’로 오랫동안 잊혀지지 않고 있는 것이다.
김희경 기자 susanna@donga.com
구독
구독 778
구독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