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일보 편집국장과 상무이사, 문화일보 사장을 지낸 남시욱(南時旭·사진) 세종대 석좌교수가 최근 펴낸 654쪽짜리 ‘한국 보수세력 연구’(나남출판사)가 그것.
이 책은 조선말의 개화운동에서부터 지난해 말 나타난 뉴라이트 운동까지 120년이 넘는 시간대를 다루고 있다. 특히 이승만(李承晩) 정권 말기 이후 한국 현대정치사에 대한 분석에는 직접 현장 기자로 활동한 저자의 경험이 녹아 있다.
남 교수는 한국의 보수세력을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정치적 이념으로 삼는 우파 세력’으로 규정하면서 그 기원을 조선조 말 개화파에서 찾았다. 한국에서 자유민주주의 사상은 광복 후 미군정이 들어오기 전에 이미 개화파에 의해 민회(국회) 설립운동과 입헌군주제 도입 운동 등으로 그 싹이 나타났으며 이는 대한제국 멸망 후에도 공화주의로 발전해 상하이 대한민국 임시정부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이들 근대화 세력은 1920년대에 사회주의자들과 구분해 민족세력 또는 우파세력으로 불리게 되고, 해방공간과 6·25전쟁 당시에는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체제를 지키는 데 앞장서면서 반공을 기치로 내세우게 됐다는 것이 저자의 분석이다.
그러나 남 교수는 “신념 체계가 그렇다고 해서 이들이 언제나 그 신념대로 행동한 것은 아니다”라고 말한다. 정치세계에서는 이념과 현실 사이에 항상 괴리가 있으며 그 때문에 한국의 보수세력 역시 긍정과 부정 양면의 평가를 받을 수밖에 없다는 것.
남 교수는 한국 보수세력이 범한 과오로 일부 세력이 친일파로 변절하고 분단정권을 수립했으며 권위주의정권 수립에 앞장서거나 협력했다는 점, 정경유착과 관치금융으로 국민경제를 멍들게 했다는 점 등을 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한민국 건국과 민주화, ‘한강변의 기적’을 이루는 등 보수세력은 공로가 과오보다는 분명히 더 컸다고 저자는 강조했다. 보수세력은 2002년 대선과 지난해 4·13총선을 거치면서 한국사회 지배집단의 지위를 잃었다는 것.
그는 “오늘의 상황은 민주화는 진행됐으나 자유민주주의의 또 다른 요소인 자유주의적인 가치는 아직 구현이 만족스럽지 못하다”고 지적하고 그 예로 국가정보원 도청사건으로 드러난 권위주의적 정치문화, 언론시장 개입 등 정부의 과도한 규제를 들었다.
남 교수는 “자유민주주의를 기본 이념으로 삼는 한국의 보수세력이 시대적 장애를 극복하지 못하면 자신들의 미래도 없을 것”이라며 “보수·우파세력이 새로운 보수세력으로 비약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장강명 기자 tesomio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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