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줌인]신년운세…취업-연애 등 카운슬링 “결정은 스스로”

  • 입력 2005년 12월 30일 03시 0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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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말 연초엔 점을 보는 사람들이 늘어난다.

역술가들은 평소보다 50%가량 증가한다고 말한다.

점을 보려는 이들의 공통된 고민은 미래에 대한 궁금증이나 불안이다.

사업 직장 궁합 연애운 등 역술가를 통해 듣는 이야기들은 삶의 변화를 앞둔 이들에게 일종의 ‘정보’다.

특히 첨단 과학의 시대인 요즘에는 점술이 상담의 창구로 자리 잡고 있다.

점에 대한 불신(不信)이 엄연히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점이 카운슬링의 한 방식이 된 것이다.

인터넷 사이트 ‘무불통닷컴’의 정창용 대표는 “요즘 사람들은 점을 따르기보다는 불안한 상황을 함께 고민하고 조언을 받는 ‘라이프 컨설턴트’의 개념으로 여긴다”고 말했다.

2005년이 얼마 안 남은 최근 며칠간 무속인의 집과 젊은 층이 자주 찾는 ‘사주카페’의 풍경을 스케치했다.》

○ “함께 의논하고 싶어서…”

역술 산업은 21세기에도 인터넷이나 사주카페 등과 접목돼 확산되고 있다. 최근 사주카페에서 젊은 층에게 인기있는 타로 카드점. 변영욱 기자

20일 오후 4시경 서울 서대문구 대현동 이화여대 앞에 있는 한 사주카페.

12개 테이블 중 손님이 앉은 곳은 7개. 연인으로 보이는 한 커플을 제외하면 모두 20, 30대 여성들이다. 역술가들과 점을 보는 손님들이 앉은 세 테이블을 제외하면 다른 곳은 손님끼리 대화를 나누고 있어 여느 카페와 크게 다르지 않다.

이곳에서 역술가 산월(37)에게 점을 보고 있는 두 여대생 한선희(23) 정인순(22) 씨는 동아리 선후배 사이. 약속 시간이 남아 “심심풀이로 점이나 보자”며 이곳에 들렀다.

점을 보기 시작할 때만 해도 두 여성의 얼굴에는 웃음이 가득했다. 하지만 구체적인 사안으로 들어갈수록 눈빛이 변했다. 표정도 진지해졌고 눈도 자주 깜빡거리지 않았다. 인테리어 디자인을 전공하는 한 씨가 직업에 대한 고민을 털어놓기 시작하면서는 숨소리도 조용해졌다.

한 씨는 “(점을) 특별히 믿진 않지만 실제 고민을 이야기할 때는 심각해진다”며 “좋은 결과가 나오면 웃어 넘기지만 나쁜 얘기를 들으면 아무래도 마음에 걸린다”고 말했다. 두 여성은 1년에 두어 번씩 점을 본다고 한다.

산월은 “사주카페를 찾는 이들의 95%는 20, 30대 여성”이라며 “가벼운 마음으로 왔다가도 막상 속마음을 털어놓고 우는 사람도 자주 있다”고 말했다. 사주카페에 남자들이 혼자 오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한다.

이곳에서 가장 많이 나오는 고민은 ‘애정운.’ 10명 중 9명은 언제 애인을 사귈지, 지금 남자 친구와는 잘 될지를 묻는다. 학생은 진로에 대한 고민, 직장인은 이직이나 상사와의 갈등에 대한 질문도 빠지지 않는다. 최근엔 유학이나 이민 상담도 많이 늘었다.

역술가들은 처음에는 꺼리는 이들도 막상 고민을 털어놓기 시작하면 그 수준이 예상보다 깊어지는 경향이 있다고 말한다. 일단 점술가에 대한 신뢰가 어느 정도 형성되면 자기 고민을 털어놓기 시작한다는 것이다.

특히 남녀 관계에 대한 질문은 잠자리에 관한 사항도 많다. 듣기에 민망할 정도로 속궁합에 대한 고민을 털어놓는 여성들도 있다. 카페에 들어설 때 함께 오는 손님의 수를 보면 털어놓는 고민의 깊이도 가늠된다. 혼자 오는 손님은 심각한 상태이거나 중요한 결정을 내려야 하는 경우다. 두 사람이 함께 오는 경우는 비밀이 지켜지는 사이다. 직접 말하기 쑥스러운 고민은 친구가 대신 물어 보기도 한다. 세 명 이상이 오는 경우는 평범하고 일상적인 질문을 많이 하며 웃다가 간다.

한 역술인은 “여럿이 함께 와서는 잘 안 맞는다며 웃어 넘겼던 고객이 나중에 혼자 와 ‘진짜 고민’을 상담하는 경우도 많다”고 귀띔했다.

하지만 고민을 털어놓을 때의 심각한 분위기와는 달리 점을 ‘숙명’으로 받아들이는 고객은 드물다. 대학생 안주희(22) 씨는 “친구나 선배와 고민을 많이 나누지만 부족할 때가 많다”며 “결정은 내가 하지만, 함께 상의하고 조언을 구하는 기분으로 이곳에 온다”고 말했다.

정창용 대표는 “미국인이 정신과의사와 상담하는 것처럼 한국인은 역술가와 만난다고 보면 된다”며 “고민을 털어놓고 함께 방법을 모색해 본다는 것 자체에서 스트레스를 푼다는 의미도 크다”고 말했다.

○ “치성 드리면 좋은 날 오겠죠”

서울 서초구 양재동의 한 전통 점집. 기자가 찾은 날이 마침 동지(冬至)여서 손님들이 붐볐다. 이곳의 역술가는 30여 년 전부터 장군신을 모시는 여성 무속인 김희수 씨.

‘경기가 불황이면 점집 문턱이 닳는다’는 속설이 이곳에서는 맞는 편이다. 단순 상담은 줄지만 굿 같은 큰 행사는 경기가 나쁠수록 늘어난다고 한다. “경기가 나쁘면 1만원도 아까워한다”고 한 사주카페 관계자의 말과는 거리가 멀었다.

충북 청주시에서 온 정남진(41·사업) 씨는 4월부터 음력 초하루마다 방문하는 단골이다. 정 씨와 무속인의 상담은 가까운 이들의 대화 같다. 자녀는 잘 크는지부터 잠을 잘 못 자면 잠자리를 바꿔 보라는 등 시시콜콜한 이야기도 나눈다. 정 씨에 대한 이야기뿐 아니라 김 무당의 일상 생활도 대화에 오른다.

그러나 정 씨가 상담하러 온 신규 투자에 대해서는 명확한 대답이 나오지 않는다. 김 씨는 “세상에는 여러 신이 혼재하고 있어 단정할 수 있는 것은 없다”며 “내가 신이 아닌 이상 ‘된다’ ‘안 된다’를 결정하는 게 아니라, 좋은 기운이 느껴지는지 아닌지를 판별해 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정 씨도 비슷한 생각을 지니고 있었다. 그는 “여기 온다고 모든 액운을 다 막을 수 있다고 믿지 않는다”며 “정기적으로 와서 좋은 기운을 받고 심신의 안정을 얻는 게 더 중요하다. 꾸준히 치성을 드리면 나쁜 일 당하지 않고 살 것이라는 믿음 때문에 온다”고 말했다.

상담 분위기도 사주카페와 크게 다르다. 사주카페는 처음에 가볍게 왔다가 나중에 심각한 고민을 상의하는 반면, 이곳은 처음부터 심각한 고민으로 찾아온 뒤 ‘액땜’ 차원에서 계속 온다.

남성 고객이 많은 것도 다르다. 여성은 20대부터 50, 60대까지 다양하지만 남성은 40대 이상이 대부분이다. 여성들의 고민은 애정 문제가 높은 비중을 차지하지만, 남성은 사업에 대한 상담도 많다.

가출한 19세 아들 걱정 때문에 이곳을 찾은 조모(57·서울 동대문구 휘경동) 씨. “조상이 보살펴줘 잘 지낸다”는 것 외에 속시원한 대답은 들을 수 없었다. 귀가 시기에 대해서도 “곧 돌아온다”가 전부였다.

조 씨는 “인생은 순리가 있어 억지를 부린다고 이뤄지는 게 아니다”며 “순리대로 살면 좋은 날이 오며 내가 과연 그렇게 살고 있는지 확인하고 싶어 왔다”고 말했다.

정양환 기자 ray@donga.com

▼운세 사이트 300여개… 서양점술보다 전통역술 선호▼

한국역술인협회(회장 백운산)는 현재 전국에서 활동하고 있는 역술가나 무속인이 50만여 명으로 추산하고 있다. 그러나 음성적으로 활동하는 이도 많아 실제로는 이보다 훨씬 많을 것으로 보인다.

역술 산업의 규모에 대한 정확한 집계는 없다시피하다. 백 회장은 “한때 국내 영화산업 규모(지난해 2조3000억 원)와 맞먹는다는 설도 있었다”며 “최근 경기 불황으로 줄었다고는 하지만 1조8000억원으로 추산된다”고 말했다.

최근 온라인 역술 사이트도 호황을 누리고 있으나 오프라인 시장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자신의 불안이나 고민을 털어놓기 때문에 얼굴을 마주 보는 오프라인을 훨씬 더 선호한다는 것이다.

인터넷 포털 사이트 ‘네이버’의 한 관계자는 국내에 온라인 유료 사이트는 300여 개가 개설되어 있으며 시장 규모는 올해 70억 원을 웃도는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이 관계자는 “080 전화서비스나 불법사이트를 합하면 시장 규모는 훨씬 커질 것”이라고 말했다. 최근 급증하는 모바일 역술 시장의 규모는 180억 원으로 추산된다.(SK텔레콤 추정)

인터넷이나 모바일은 별자리점이나 타로카드 등 서양 역술도 서비스하고 있으나 가장 인기를 끄는 것은 전통 역술인 ‘사주’와 ‘궁합.’ ‘네이버’에 따르면 운세 사이트를 방문하는 고객 중 남성은 48%가 사주를, 여성은 63%가 궁합을 본다고 한다. 남자들은 30대와 40대가 많으며 20대보다 40% 이상 자주 찾아온다. 여성은 20대가 30, 40대보다 50% 이상 많다.

네이버의 운세 사이트 관계자는 “오프라인 역술관을 찾는 이들을 감안하면 어느 세대가 어떤 점을 많이 보는지는 가늠하긴 어려우나 나이나 세대와 상관없이 서양 점술보다 전통 역술을 선호하는 경향이 뚜렷하다”고 말했다.

정양환 기자 ra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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