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뇨 지게를 진 일꾼들이 같은 모습의 사내에게 허리 굽혀 절을 한다. 주인공이 의아한 표정으로 묻는다. “저 어른이 누구신가요?” “쉿, 경무대서 똥을 치는 분이오.”
1958년 초, 동아일보 연재만화 ‘고바우 영감’은 대통령 관저인 경무대(景武臺) 주변 인사들의 특권의식을 이같이 풍자했다. 2년 뒤인 1960년 4월, 경찰은 부정선거에 항의하며 경무대 앞으로 몰려온 시위대에 발포했다. 며칠 뒤 제1공화국은 무너졌다.
그해 8월 취임한 윤보선(尹潽善) 대통령은 대통령 관저 이름을 바꾸어야 한다는 잇단 건의를 받았다. ‘경무대’라는 이름이 이전 정권의 고압적인 통치를 떠올리게 한다는 것이다.
서울시사(市史)편찬위원장이었던 김영상(金永上) 씨는 ‘화령대(和寧臺)’ ‘청와대(靑瓦臺)’라는 두 가지 이름을 제시했다. 고고학을 전공한 윤 대통령은 “푸른 기와집이라는 뜻의 ‘청와대’가 우리나라 고유의 전통을 나타내는 점에서 바람직하니 청와대로 하자”는 결정을 내렸다. 결정된 이름은 12월 30일 발표와 함께 공식 통용되기 시작했다.
본디 경무대는 고종 5년(1868) 경복궁이 중건되면서 그 후원에 지어진 건물이었다. 조선을 병합한 일제는 경복궁 후원의 시설들을 철거하고 그 자리에 1939년 총독 관저를 지었다. 관저의 명칭은 헐린 건물 중 하나인 ‘경무대’의 이름을 땄다. 이름의 기원에 대해서는 여러 설이 있지만 경복궁의 ‘경(景)’과 궁의 북문인 신무문(神武門)의 ‘무’에서 따왔다는 설이 우세하다.
20여 년 동안 쓰인 이름을 바꾼 뒤에도 이 집의 주인들이 겪을 운명은 순탄하지 않았다. 권총에 쓰러진 대통령, 퇴임 후 수감된 대통령, 자식이 연루된 비리의 파장 속에 초라하게 퇴임한 대통령….
1990년 2월에는 새 대통령 관저 신축 공사장 바로 뒤의 바위에서 ‘천하제일복지(天下第一福地)’라고 쓰인 표석이 발견됐다. 감정 결과 조선 중기의 것으로 판명됐다. ‘천하제일복지’는 왜 그 주인들에게 복된 운명을 내리지 못하고 있을까.
현 정권 들어 ‘행정수도’ 천도가 착수되면서 청와대 부지의 활용 문제도 논란거리가 됐다. 그러나 행정수도안이 청와대 국회 등을 뺀 ‘행정중심복합도시’안으로 바뀌면서 청와대는 대한민국의 고민과 문제를 계속 떠안게 됐다. 최소한 ‘천하제일’로 기(氣)가 센 자리라는 점은 입증된 셈이다.
유윤종 기자 gustav@donga.com
구독
구독
구독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