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환자에 행복 주는 희귀병 소녀시인 김현영양

  • 입력 2006년 1월 4일 03시 02분


병상의 시인 김현영 양(오른쪽)이 지난해 11월 말 퇴원하기 직전 함께 생활해 온 한 어린 환자의 손을 꼭 잡고 있다. 홍수영 기자
병상의 시인 김현영 양(오른쪽)이 지난해 11월 말 퇴원하기 직전 함께 생활해 온 한 어린 환자의 손을 꼭 잡고 있다. 홍수영 기자
지난해 5월 서울 송파구 풍납동 서울아산병원 아동병동. 어린 환자들은 엉엉 울었다. 돌아앉은 부모들은 흐느꼈다. 수술실로 들어가는 김현영(17) 양이 직접 지어 낭독한 ‘슬픈 웃음’은 모두의 이야기였다.

“제 시에 하염없이 우는 아이들과 부모님들을 보면서 미안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현영 양은 희귀 뇌종양인 ‘원시신경외배엽성종양’을 앓고 있다. 30cm 이내에 있는 것만 볼 수 있는 현영 양은 4년째 시를 쓰고 있다. 그의 시는 꼬마 환자들의 마음을 쓰다듬는 선물이다. 그는 5년 넘게 투병 중인 김도집(13) 군에게 ‘아파요’라는 시를 써 줬다. 시를 읽은 도집 군은 “내 마음을 어떻게 이렇게 잘 아느냐”며 현영 양을 부둥켜안고 울었다.

지난 크리스마스 때는 삐뚤빼뚤한 글씨로 자신에게 암 선고를 한 의사, 과거 담임선생님, 중학교 2학년 때 교생 선생님, 신부, 수녀님 등 40여 명에게 카드를 보냈다. 잘 보이지 않는 눈으로 꼬박 사흘 밤낮이 걸렸다.

희귀병과의 싸움은 지난한 고통의 연속이었다.

“중학교 2학년 때였어요. 칠판에 글씨가 하나도 없는데 선생님은 필기하라고 하고 친구들도 노트에 뭔가를 적더군요. 짝꿍에게 ‘뭘 적느냐’고 묻자 칠판 글씨가 안 보이느냐고 되묻더군요.”

처음에는 시력이 나빠진 줄만 알고 안경을 바꾸고 교실의 맨 앞자리로 옮겼다. 책을 읽을 때는 확대경으로 한 자 한 자 읽어야 했다. 중학교 3학년 때는 갑작스러운 경련으로 중환자실에서 며칠간 무의식 상태에 빠지기도 했다.

현영 양은 여러 병원을 거쳐 2004년 6월 서울아산병원에서 희귀 뇌종양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어머니 얼굴을 제대로 볼 수도 없다. 항암 치료와 방사선 요법은 현영 양의 머리카락을 다 앗아갔다.

하지만 ‘기적’이라고 부를 만한 일이 일어났다. 지난해 6월 종양이 척추로 옮아가는 현상이 사라져 상태가 더 이상 악화되지 않게 된 것. 부작용 때문에 항암제조차 제대로 못 써 생존 가능성이 희박하던 상황이었다. 현영 양은 지난해 12월 22일 퇴원해 현재 통원치료를 받고 있다.

현영 양의 어머니 정미숙(43) 씨는 “다른 환자의 어머니들이 무슨 방법을 썼느냐고 묻는다”면서 “딸의 밝고 긍정적인 마음 덕분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현영 양은 하고 싶은 일이 많다.

내년에는 입학만 하고 한 번도 가 보지 못한 전북 전주시 우석여고로 돌아가 공부를 하고 싶다. 또 자신의 시 노트가 다 채워지면 시집을 내고 싶다. 장래에 수녀가 되고 싶은 꿈도 포기하지 않고 있다.

“얼마 전 중학교 2학년 때 담임선생님에게 ‘너희처럼’, ‘인생의 계단’ 등 제가 지은 시 몇 편을 보냈습니다. 선생님께서 학생들이 힘들어할 때 제 시를 읽어 주며 용기를 북돋아 준다고 하네요. 올해 더 많은 사람들이 함께 시를 읽고 꿈과 희망을 나누면 얼마나 좋을까요.”

윤완준 기자 zeitung@donga.com

홍수영 기자 gae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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