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방적 문화 전달 TV는 가라…‘테크노 컬처’ 시대 열린다

  • 입력 2006년 1월 6일 03시 03분



“섀도 스나이퍼팀 대장은 M24 소총의 망원렌즈를 노려보며 총을 쏘았다. 바로 전 미군을 죽인 이라크 반군 한 명이 픽 쓰러졌다….”

이라크전쟁의 생생한 모습이 담긴 블로그 ‘블랙 파이브’가 미국에서 선풍을 일으키고 있다. ‘맷’이라는 ID의 미군이 전장에서 운영하는 이 블로그는 이라크전 찬반 논란이 가열되면서 방문자가 급증하고 있다.

○ 콘텐츠 ‘소비자’에서 ‘창조자’로

미국을 비롯한 지구촌의 문화권력 지도가 바뀌고 있다. 문화 생산의 주체가 TV 라디오 영화 음반 등 대중매체에서 블로그처럼 사용자 검색과 참여 기능에 초점을 맞춘 쌍방향 신기술로 옮겨가고 있는 것.

최근 LA타임스 매거진은 특집기사에서 2006년을 ‘테크노 컬처 시대의 원년’으로 규정했다. 정보기술 잡지 ‘와이어드’의 존 바텔 설립자는 “블로그, 비디오 블로그, 위키, 파드캐스팅, 티보 등 신기술에 밀려난 ‘매스 컬처(대중문화)’에 장례식을 치러 줄 때가 됐다”고 선언했다.

테크노 컬처의 특징은 ‘보텀 업(Bottom-Up)’ 기능을 갖추고 있는 것. 사용자가 콘텐츠 소비자에서 벗어나 원하는 정보를 추려내고, 한 걸음 더 나아가 창조하는 역할까지 담당하게 된 것이다.

○ ‘이기지 못할 바에는 손을 잡으라’

사용자가 자신이 원하는 오디오 비디오 파일을 내려받아 즐길 수 있는 애플의 ‘아이팟’은 2001년 등장한 후 4년 만에 전 세계적으로 2800만 개가 팔렸다.

지난해 아이팟이 미국 젊은이들의 여가생활을 어떻게 바꾸어 놓았는지를 분석한 ‘아이팟이 있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iPod, Therefore I am)’라는 책이 베스트셀러에 올랐을 정도다.

음반 시장의 더 큰 위협은 마이스페이스닷컴과 같은 음악 블로그 검색 사이트들. 소비자들은 인기 가수의 CD를 사기보다는 이곳에 접속해 아마추어 음악가들이 블로그에 올린 음악 파일을 감상하고 토론을 벌이며 직접 구매도 한다.

점점 설 자리가 좁아지는 방송, 영화, 음반 회사들은 테크노 컬처와 무모한 싸움을 벌이기보다는 제휴를 통해 콘텐츠의 우위를 유지한다는 전략을 갖고 있다.

ABC방송은 인기 드라마 ‘위기의 주부들’ ‘로스트’를 비디오 아이팟을 통해 제공하고 있다. LA타임스는 누구나 웹사이트 내용을 고칠 수 있는 위키 기술을 활용해 독자가 자사 인터넷 사이트에 실린 논설을 편집할 수 있도록 했다.

○ 검증된 정보 구별 능력 필요

대중매체가 전문가의 의견을 신뢰하는 것과 달리 블로그와 파드캐스팅은 전문 지식보다는 수평적 정보 교류에 더 중점을 둔다.

문제는 정보 참여와 공유는 쉽지만 검증이 어렵다는 것. 사용자가 직접 정보를 게재하는 온라인 백과사전 위키피디어는 최근 잘못된 정보를 올리는 사례가 속속 드러나면서 신뢰도에 큰 손상을 입었다.

민경배 경희사이버대 교수는 “한국은 어느 나라보다 테크노 컬처 강국으로 부상할 잠재력이 크다”면서 “검증된 정보와 그렇지 못한 정보를 구별하는 역할을 누가 담당하는가에 대한 토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정미경 기자 micke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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