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비에서]“가수의 생명은 공연입니다”

  • 입력 2006년 1월 7일 03시 0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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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일 밤 12시. 서울 강남구 청담동의 한 라이브 클럽 무대에 가수 조용필(56)이 섰다. 일제히 함성이 터졌다. “용필 오빠.” “선배님, 선배님.” 그러나 환호도 잠시. 그가 입을 열자 분위기는 진지해졌다.

“1990년대 초반 지방 공연 무대에 섰는데 관객이 거의 안 왔더라고요. TV 출연을 하지 않는다고 선언하니 다들 냉정하게 돌아섰죠. 3년 동안 실망도 많이 했지만 그래도 반응이 있든 없든 공연에만 몰두했습니다. 후배님들, 두려워하지 말고 공연하세요. 가수에겐 공연이 전부입니다.”

“오빠 멋져요”, “역시 선배님”이란 탄성이 이어지는 가운데 그는 조용히 마이크를 들었다.

“꿈은 하늘에서 잠자고…” 순간 후배들은 무대 앞쪽으로 몰려들어 일제히 무릎을 꿇고 조용필의 노래를 숨죽이며 들었다. 발라드의 황제 신승훈도, 밀리언셀러 가수 조성모도, 가요대상에 빛나는 그룹 ‘god’의 멤버 김태우도 ‘가왕(歌王)’ 앞에서는 체면을 접었다. 서서 노래를 부르던 조용필도 무대에 주저앉았다. 그리고 후배들과 일일이 눈을 맞추며 함께 ‘친구여’를 합창했다.

이날 가수 신년회의 구심점은 조용필이었다. 이문세, 이은미, ‘봄여름가을겨울’ 등 중견부터 김종서, 김경호 등 로커와 싸이, 조PD, 드렁큰타이거 등 래퍼까지 장르도 나이대도 다른 30여 명의 가수들이 새벽이 가깝도록 웃고 떠들고 노래했다. 이문세가 ‘빅 마마’의 코러스를 받으며 ‘붉은 노을’을 부르는 것도, 김종서의 드럼 연주에 맞춰 박효신과 김태우가 ‘여행을 떠나요’를 노래하는 것도, 이은미가 홍경민의 춤에 맞춰 ‘모나리자’를 부르는 것도 모두 TV에서는 볼 수 없는 대박 공연들이었다.

한쪽 테이블에서는 “저 요새 공연 인기 많다고 조용필 선배님이 칭찬하셨어요”라는 싸이, 다른 테이블에서는 “저 같은 C급 가수를 공연 열심히 했다고 이런 자리에 불러주신 것만으로도 영광이에요”라며 흥분한 드렁큰타이거의 목소리가 들렸다. 모두가 ‘조용필 밴드’의 일원 같았다.

이날 가수들은 조용필이 제안한 대규모 라이브 공연 ‘코리아 뮤직 페스티벌’의 성공을 다짐했다. 비록 몇 개월 후 각자의 공연 스케줄이나 음반 작업 때문에 성사가 힘들어진다 해도 “가수의 생명은 공연”이라고 외치는 이날의 결의만큼은 신선하고 믿음직했다.

신년회에는 신승훈, ‘봄여름가을겨울’ 등 평소 조용필과 친분이 두터운 가수들도 있었지만 린, 드렁큰타이거, ‘클래지콰이’ 등 “처음 뵙겠습니다”라며 조용필에게 쭈뼛쭈뼛 인사한 신세대 가수도 많았다. 아마도 이들은 이날 밤 많은 것을 배웠을 것이다. TV 오락 프로그램 출연이나 누드 화보집 촬영 등에서는 결코 얻을 수 없는 선배 가수의 가르침을….

김범석 기자 bsis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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