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자 이야기]<4>大辯不言

  • 입력 2006년 1월 9일 03시 0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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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문제가 발생하면 세상에는 말이 많아진다. 이 경우에 문제의 책임자는 세상의 말에 응답을 해야 한다. 그러나 책임을 지고 있는 사람이 시원한 응답을 못 하는 경우가 있다. 이 경우의 책임자는 대개 세 가지 중의 한 가지 상황에 있게 된다. 첫째, 자신도 정답을 모르는 경우로 책임자가 의무를 다하지 않은 것이다. 둘째, 자신도 속고 있는 경우. 이때는 사회나 역사가 이를 밝혀 주어야 한다. 셋째는 정답을 알고 있으면서도 말할 수 없는 경우로 이때 책임자는 답답할 것이다. 그러나 답을 말함으로써 누군가를 혹독하게 비난해야 하거나, 답을 말해도 세상이 이를 믿어주지 않거나, 혹은 세상이 이를 이해할 수 없다고 판단하는 경우에, 그는 말을 하지 않게 된다. 세상이 믿어주지 않거나 세상이 이해할 수 없는 정답이라면, 이는 위대한 정답이거나 위대한 변론일 수 있다.

‘大辯不言(대변불언)’이라는 말이 莊子(장자)에 나온다. ‘大(대)’는 ‘크다, 위대하다’라는 뜻이다. ‘辯(변)’에 있는 두 개의 ‘辛’은 ‘낫이나 도끼와 같이 나무 등을 다듬는 날카로운 도구’를 나타낸다. 그러므로 ‘辯’은 ‘날카로운 도구로 잘 다듬어진 말’이라는 뜻이 된다. ‘辯護(변호)’는 ‘잘 다듬어진 말로 보호하다’라는 말이고, ‘辯論(변론)’은 ‘잘 다듬어진 말로 논리를 펴다’라는 말이다. ‘辯’은 이러한 과정을 통하여 ‘훌륭한 말, 좋은 말’이라는 뜻을 갖게 된다. 그러므로 ‘大辯’은 ‘위대한 말, 훌륭한 변론’이라는 의미를 갖게 된다. ‘不言’은 ‘말하지 않는다’지만, 여기서 출발해 ‘말로 하지 않는다’라는 의미를 가질 수 있다.

위의 내용을 합치면 ‘大辯不言’은 ‘위대한 주장, 위대한 변론은 말로 하지 않는다’라는 의미가 된다. 왜 말로 하지 않는 것일까? 인간의 언어는 부정확할 때가 많기 때문이다. ‘大辯不言이다’라고 생각하며 말을 하지 않는 사람은 대개 가슴으로 말하거나 행동으로 보여 준다. 이것이 아마도 莊子의 생각이었을 것이다.

허성도 서울대 교수·중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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