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굿, 時空 아우르는 복합예술”

  • 입력 2006년 1월 9일 03시 02분


한국 전통문화 속에서 무속의 의미를 찾는 한 국제세미나의 식전행사로 6일 충북 청원군 무신도갤러리에서 무당 신명기 씨(오른쪽)가 명성황후 해원굿을 보여 줬다. 청원=김희경  기자
한국 전통문화 속에서 무속의 의미를 찾는 한 국제세미나의 식전행사로 6일 충북 청원군 무신도갤러리에서 무당 신명기 씨(오른쪽)가 명성황후 해원굿을 보여 줬다. 청원=김희경 기자
《“검으나 땅에 흰데 백성들 하나같이 잘되게 도와 줄 터이니 걱정하지 말거라, 쉬이!∼” 6일 충북 청원군 남이면 외천리의 무신도갤러리. 무당 신명기(51) 씨가 지난해 10월 설립한 이 무속박물관에서 징과 태평소 소리가 요란한 가운데 무려 8시간에 걸쳐 명성황후 해원굿이 펼쳐졌다. 이날 굿이 여느 때와 다른 점은 가족의 무병장수와 재복을 기원하는 관중 대신 미국 영국 독일 네덜란드 등 6개국에서 온 학자 12명이 관중으로 참여한 점. 이들은 6, 7일 이틀간 ‘한국 전통문화와 무속의 관계’를 주제로 열린 제1회 청원국제무속세미나 참석자들이다. 세계에서 가장 화려한 샤머니즘인 한국 무속을 주제로 동서양이 만나 대화하는 자리가 마련된 것.》

무당 신 씨는 굿의 첫 순서인 산거리를 하던 도중 오색기를 들고 외국 교수들에게 다가가 깃발을 뽑게 했다. 독일 함부르크대 베르너 자세(한국학) 교수에겐 세 번 연속 기를 뽑게 하더니 기를 그의 주변에 휘두르며 액을 끊고 복을 비는 행동을 취했다. 자세 교수는 신 씨의 행동이 춤을 권유하는 뜻인 줄 알고 어깨춤을 춰 폭소가 터지기도 했다.

자세 교수는 “1966년 한국에 처음 왔을 때 무당집 옆에 살았는데 그땐 시끄럽고 무서웠다. 하지만 무당을 알게 되고 한국문화를 연구하면서 그 같은 거부감이 사라졌다. 한국 무속은 무용 음악 미술 신앙 심리치료가 뒤섞인 복합 장르”라고 말했다.

네덜란드 라이덴대의 부데바인 발라벤(한국어·문화학부) 교수도 “한국 무속처럼 화려한 의례가 체계적으로 전달되어 온 샤머니즘은 세계에 유례가 없다. 무속에 대한 비판이 많지만 무속이 한국인의 의식과 문화 형성 과정에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는 점은 인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국 무속에 대한 해외 학자들의 그 같은 분석은 7일 세미나에서 본격적으로 이어졌다.

미국 조지메이슨대 노영찬(종교학) 교수는 ‘무(巫)의 시간 감각과 기독교의 시간 개념’이란 주제발표에서 “무속은 ‘정립된 종교나 의식이 아니라 한국인의 의식과 감정 속에 깊이 들어 있는 마음의 바탕’으로 바라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국인은 기독교 불교 등 여러 종교를 갖고 있지만 내면으로 들어가 보면 도덕 기준과 심리적 상태가 다면적인 경우가 많다는 설명이다. 한 사람이 기독교도로서의 신앙을 고백하면서도 유교적 가치관으로 세상사를 판단하고 내면에서는 무속적 충동을 갖고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서양 기독교는 창조에서 종말로 시간이 일직선으로 흘러간다고 보지만 한국인의 세계관이나 무속의 입장에서 시간은 과거와 미래를 현재 속에 잉태하는 순환적 움직임을 취한다. 또 기독교에서는 우리 자신이 초월자의 피조물임을 면할 수 없는 반면 무속에서는 창조주와 피조물의 이원론적 개념이 분명하지 않아 신과의 관계가 자연스럽다.”

이탈리아 로마 라사피엔차대의 안토네타 루차 브루노(동양학) 교수는 ‘현대 한국의 신령세계와 금전적 거래’라는 발표를 통해 “굿의 목적은 우주의 다양한 존재들 사이의 관계, 상호작용을 만들어내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여러 굿의 공수(무당이 신들린 상태에서 하는 신의 말)를 분석한 결과 굿은 조상 귀신을 대변한다고 주장하는 무당과 참여자들의 끝없는 협상으로 이뤄진다. 무당은 공수를 통해 가능한 한 돈을 많이 얻어내려 하는 반면 참여자는 돈의 액수만큼 조상의 안녕과 가족의 미래에 대한 더 많은 정보와 약속을 요구하는 ‘기브 앤드 테이크’의 과정인 것이다.”


브루노 교수는 특히 길 닦음 등 온갖 종류의 고사에 돈이 쓰이고 치료 굿에서도 환자의 옷 안에 돈을 넣는 관행 등을 들면서 “무속에서 돈은 인간과 귀신이 소통하는 매개를 상징한다”고 분석했다.

이처럼 돈에 과도한 상징을 부여하는 것은 무속이 가장 많이 비판받는 점이기도 하다. 오래된 무당들도 최근 젊은 무당들이 굿을 통해 쉽게 돈을 벌 수 있다는 생각 하나로 뛰어드는 세태를 비판하고 있다. 브루노 교수의 발표에서는 월급 150만 원을 받던 은행원이 박수무당이 되어 2, 3배의 돈을 버는 사례도 소개됐다.

최근 무당 집에 단군상이 늘어난 것도 외국 학자들의 관심을 끌었다. 영국 로열 인류학 연구소의 현기 김 호가스 박사는 “단군상은 위기의 시점, 한국인이 자기 이해를 할 필요가 대두될 때마다 등장했다”면서 “10년 전보다 지금 단군상이 부쩍 늘어난 것은 한국문화의 위기에 대한 자의식, 민족주의적 경향을 반영한 것이 아닐까”하고 풀이했다.

이날 세미나는 무당 신 씨의 제안으로 이뤄졌다. 미국 심슨대 신은희(종교철학) 교수는 “샤머니즘에 대한 지속적 연구를 지원하기 위해 무속인이 투자를 해서 국제학술회의를 주최한 것은 처음 있는 일”이라고 그 의미를 평가했다.

청원=김희경 기자 susann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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