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한기흥]붕어빵과 초콜릿피시

  • 입력 2006년 1월 1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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쌀쌀한 겨울날 거리의 붕어빵은 푼돈으로 즐기는 간식으론 그만이다. 가까운 사람과 나눠 먹는 것은 낭만적이기도 하다. 붕어빵은 거의 같은 재료를 같은 틀에 넣어 구워 내기 때문에 모양과 맛에 큰 차이가 없다. 그래서 획일적이고 개성이 없는 ‘판박이’의 대명사로 불린다.

한류(韓流) 열풍이 확산되면서 중국의 대학가에 붕어빵이 등장했다. 최근 한 TV 방송이 방영한 ‘음식 한류’라는 기획물에 나온 중국의 노점상 아줌마는 한국에서 수입한 기계로 ‘원조 붕어빵’과 똑같은 모양의 붕어빵을 능숙하게 찍어 냈다. 한글로 ‘붕어빵’이라고 쓴 안내문도 내걸었다.

하지만 그는 한국에서와 달리 다양한 재료로 붕어빵의 속을 채웠다. 단팥은 물론이고 초콜릿, 우유 등으로 현지인의 기호에 맞는 붕어빵을 만들었다. 손님 중에는 중국인 외에 유럽 아프리카 중동 출신 유학생도 많았다. 한 영국인 여학생은 붕어빵을 뭐라고 부르느냐는 방송 리포터의 질문에 “나는 ‘초콜릿피시(chocolate-fish)’라고 부른다”며 함박웃음을 터뜨렸다. ‘강남의 귤이 회수(淮水)를 건너가면 탱자가 된다’고 하더니 한국의 붕어빵이 황해를 건너 초콜릿피시가 된 것이다. 이것도 세계화다. 붕어빵의 세계화.

미국 워싱턴의 백악관 부근에 있는 한 레스토랑은 조지 부시 전 대통령 등 그곳을 다녀간 정계 거물과 명사들의 사진으로 실내를 온통 장식하고 있어 인상적이다. 몇 년 전, 이 레스토랑 메뉴 중에서 ‘김치로 테두리를 감싼 스테이크(Kimchi-glazed steak)’를 발견하고 깜짝 놀란 일이 있다. 그날의 특별 메뉴였지만 서양인의 입맛에 맞게 볶은 김치로 요리한 것으로 보아 한국인 고객만을 겨냥한 것은 아닌 듯했다.

세계화는 변화하는 환경에 능동적으로 대응할 것을 요구한다. 수요자의 요구에 부응해 과감한 변신을 모색해야 경쟁력을 가질 수 있다. 한국에서 불고기피자, 갈비버거처럼 한식과 양식의 퓨전화가 이뤄지는 것도 그런 맥락이다. 삼겹살만 하더라도 ‘와인삼겹살’ ‘허브삼겹살’ 등으로 특화해야 더 잘 팔린다. 새로운 것을 처음 만드는 원조가 되든가, 아니면 발상을 바꿔 종전의 것을 뛰어넘도록 업그레이드를 꾀해야지 붕어빵처럼 남과 똑같은 생각, 행동으로는 미래의 생존을 장담할 수 없다.

‘유시민 입각 파동’을 보면서도 이런 생각을 떨쳐 버릴 수 없다. 노무현 대통령과 이해찬 국무총리가 ‘코드가 맞는’ 그를 보건복지부 장관에 내정한 것도 ‘붕어빵 찍어 내기’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여권 내에서조차 반발이 극심했던 그를 기용하는 과정에서 고객인 국민의 기호(嗜好)는 안중에 없었던 것 같다.

붕어빵은 쉽게 물린다. 노 정권의 주로 무늬뿐인 ‘개혁 붕어빵’에 신물이 난 국민이 ‘유시민’이라는 또 하나의 붕어빵을 과연 얼마나 흔쾌히 받아들일지 의문이다. 집권 초나 지금이나 달라진 게 없는 재료와 기계로 똑같은 빵만 찍어 내니, 붕어빵에 변화를 주려 한 초콜릿피시 노점상보다 마케팅 감각이 낫다고 보기 어렵다.

손님의 변화 요구를 수용하지 못하면 어떤 장사도 오래 못 간다. ‘추운 사람 따뜻하게 해 주지도 못하는’ 개혁 코드 하나에만 매달리는 정치로는 국민의 기대를 충족시킬 수 없다. 요즘 거리에선 붕어빵 대신 잉어빵이라는 게 잘 팔린다고 한다.

한기흥 논설위원 eligiu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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