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자 이야기]<6>慢(만)

  • 입력 2006년 1월 13일 03시 0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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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빨리빨리’ 정신은 나라 발전의 원동력이 되기도 하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실수의 중요한 원인이 되기도 한다. 새해에는 조금은 ‘천천히’ 생각하고, 조금은 ‘천천히’ 움직여 볼 만도 하다. 한자에서는 ‘慢(만)’이 ‘천천히, 느리게’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이제 ‘慢’이 어떤 이유로 이러한 뜻을 갖게 되었는지를 알아보자.

‘曼(만)’은 ‘길게 널리 퍼지다’라는 뜻이다. 그러므로 이 ‘曼’과 ‘수(물 수)’가 합쳐진 ‘漫(만)’은 ‘물이 길게 널리 퍼져 있는 모양’을 나타낸다. 이 모양에서 ‘물이 질펀하다, 물이 넘쳐흐르다’라는 의미가 나온다. ‘물이 넘쳐흐르는 모양’을 살펴보기로 하자. 물길은 멋대로 흩어지고, 물길에 물건들이 휩싸일 것이다. 따라서 ‘漫’에는 ‘멋대로, 흩어지다, 어지럽다, 가라앉다’라는 의미가 생기게 된다. ‘漫評(만평)’이라는 말은 ‘그저 멋대로 해보는 비평’이라는 뜻인데, 이 경우의 ‘漫’은 ‘멋대로’라는 뜻이다. 그러므로 ‘漫評’을 하는 사람은 자신의 비평에 대하여 큰 책임을 지지 않는다. 어린이들이 많이 보는 ‘漫畵(만화)’도 ‘멋대로 그린 그림’이라는 뜻이다. 요즈음 나오는 ‘漫畵’는 내용이 의미심장한 것도 많지만 그림만은 독자에게 부담을 주지 않겠다는 의도일 것이다.

‘曼’과 ‘심(마음·심)’이 합쳐진 ‘慢’은 ‘마음이 길게 널리 퍼져 있는 모양’을 나타낸다. 이 모양에서 ‘천천히, 느리다’라는 뜻이 나온다. 행동이 느리면 게으르게 보이므로 ‘게으르다’라는 뜻이 나오는데, 행동이 너무 느리고 게으르면 또한 오만하게 보이기도 하는 모양이다. ‘慢’에는 ‘오만하다’의 뜻도 있다. ‘慢性病(만성병)’은 ‘느리고 오래 지속되는 병’이라는 뜻이므로 이 경우의 ‘慢’은 ‘천천히, 느리다’이고, ‘怠慢(태만)’은 ‘怠(게으를 태)’와 ‘慢’이 만나 ‘게으르다’는 뜻을 이룬다.

너무 느려서 게으르거나 오만하게 보여서는 안 되겠지만 그러나 이제는 여유를 가지고, 천천히 생각하며 천천히 움직이는 한 해가 되기를 기원해 본다.

허성도 서울대 교수·중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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