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한 미군과 한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백인계 혼혈인 남 씨는 차별과 냉대를 견디다 못해 2차례나 자살을 시도하기도 했다. 20세에 ‘하산’했지만 사회생활에 적응하지 못해 마약에 손을 대는 바람에 교도소를 드나들었다. 남 씨의 삶은 최근 인기를 끌고 있는 백인계 혼혈 연예인 다니엘 헤니(사진), 데니스 오, 김디에나 등과는 전혀 다르다.
비록 한국 국적은 아니지만 이들이 TV 드라마와 광고에 자주 등장하자 “혼혈인을 바라보는 한국인의 시각이 달라졌다”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
하지만 백인계 혼혈인 배기철(裴基喆·50) 씨는 국가인권위원회의 TV 공익광고에 나와 주민등록증을 내보이며 “제 이름은 배기철입니다. 저는 한국인입니다. 단지 피부색이 다를 뿐인데 사람들은 자신들과 다르다고 합니다”고 말한다.
몇몇 백인계 혼혈 연예인이 젊은 층에서 인기를 누리고 있으나 이는 어디까지나 연예인에 대한 동경일 뿐이다. 전쟁과 분단이란 불행한 과거사가 낳은 혼혈인뿐만 아니라 최근 국제결혼을 통해 태어난 혼혈인도 ‘이방인’으로 취급하는 분위기가 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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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계청에 따르면 한국인과 외국인의 결혼 건수는 2000년 1만2319건에서 2001년 1만5234건, 2002년 1만5913건, 2003년 2만5658건, 2004년 3만5447건으로 해마다 급속도로 늘어나는 추세다. 이 중 30%가량은 필리핀 베트남 태국 우즈베키스탄 등 2세가 혼혈임이 외관상 쉽게 드러나는 나라의 배우자와 결혼하고 있다.
하지만 정부는 혼혈인이 몇 명인지조차 파악하지 못할 정도로 혼혈인 정책에 무관심하다.
전문가들은 혼혈인을 ‘대한민국 국민’으로 끌어안을 수 있는 구체적인 정책을 지금부터라도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전북대 설동훈(薛東勳·사회학) 교수는 “최근 무슬림 이민자의 소요 사태가 발생한 프랑스에 비해 한국은 사회적 이방인들을 위한 배려가 훨씬 부족하다”며 “노동 교육 복지 등의 분야에서 혼혈인을 끌어안는 정책을 마련하지 않으면 큰 사회적 갈등에 직면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종석 기자 wing@donga.com
윤완준 기자 zeit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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