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갈피 속의 오늘]1977년 日‘선전방송의 꽃’ 토구리 사면

  • 입력 2006년 1월 19일 03시 22분


‘도쿄의 장미(Tokyo Rose).’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미군의 사기를 떨어뜨리기 위해 유창한 영어로 라디오 선전방송을 하던 일본인 여자 아나운서들을 미군들은 이렇게 불렀다. 전장의 축축한 참호 안에서 미군들은 나긋한 여자 목소리를 들으며 ‘욕망’을 달랬을지도 모른다.

그래서일까. 도쿄의 장미란 이름엔 뭔가 불길하면서 도발적인 느낌이 묻어 있다. 뱃사람을 유혹해 파선시켰다는 그리스 신화 속 바다의 요정 세이렌을 연상시킨다.

하지만 도쿄의 장미는 어느 때부턴가 한 여성의 운명과 같은 별칭이 되어 버렸다. 아이바 토구리(Iva Toguri). 일본명이 도구리 이쿠코(戶栗郁子)인 그녀는 미국 로스앤젤레스 이민 가정에서 태어나 로스앤젤레스 캘리포니아대에서 동물학을 전공한 일본계 미국인.

그녀는 1941년 6월 몸이 아픈 숙모를 방문하기 위해 일본으로 건너갔다. 그해 12월 발발한 태평양전쟁은 기구한 운명의 시작이었다. 미국 시민권을 포기하라는 일본 당국의 압력을 거절한 그녀에겐 ‘적성 외국인’이란 딱지가 붙었다.

일본어도 못하는 데다 식량 배급마저 못 받는 신세가 된 그녀가 찾은 직장은 ‘라디오 도쿄’. 그녀는 ‘고아 앤(Orphan Ann)’이란 방송명으로 한 시간짜리 프로그램의 디스크자키로 일하게 된다. 음악을 틀어 주며 간간이 거짓 정보를 흘리는 프로파간다(선전)에 참여하게 된 것.

전쟁이 끝난 뒤 미국으로 돌아간 토구리는 반역죄로 기소된다. 그녀는 반역 혐의를 전면 부인했지만 반일 감정이 들끓던 당시 분위기에선 용서받기 어려웠다. 그녀는 시민권 박탈과 함께 10년 징역형을 선고받는다. 6년의 징역살이 끝에 1956년에야 죄수번호 ‘9380-W’는 풀려난다.

간신히 추방령만 면한 채 무국적자로 살던 토구리의 신원(伸寃)은 10년 뒤에나 이뤄진다. 기자들의 추적 끝에 그녀의 반역 행위를 증언했던 이들이 거짓이었음을 실토하면서 그녀의 이야기가 TV 방송을 타게 된 것.

제럴드 포드 대통령은 1977년 1월 19일 퇴임 하루 전 마지막 공식 업무로 그녀에 대한 완전 사면조치를 취한다. 그 뒤로 토구리는 일반의 기억에서 잊혀졌다. 올해로 90세가 되는 그녀는 몇 년 전까지도 시카고에서 일본수입품 상점을 했다고 전해진다. 유명인의 생사 여부를 알려주는 인터넷 사이트(deadoraliveinfo.com)에는 그녀가 생존하는 것으로 나와 있다.이철희 기자 klim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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