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익 교수 “엉터리 번역 탓에 인문학 병들어”

  • 입력 2006년 1월 19일 03시 22분


한국 번역문화의 문제점을 매섭게 질타한 책이 나왔다.

우석대 역사교육과 박상익 교수는 최근 펴낸 ‘번역은 반역인가’(푸른역사)라는 책에서 “한국 인문학의 위기는 엉터리 번역서의 양산에 있다”며 ‘번역은 반역이다’라는 말 뒤에 숨어서 제대로 된 번역을 외면해 온 한국학계의 고질적 문제점을 정면으로 비판하고 나섰다.

박 교수는 ‘조교에게 대신 번역시킨 원고를 출판하는 행위는 대학교수라는 신분과 명성에 의지한 매춘행위’라는 작가 안정효의 말을 인용하면서 대학원생들에게 번역과 감수를 다 맡기고 자기 이름으로 버젓이 책을 내는 일부 교수들의 도덕불감증을 비판했다.

그는 이런 번역문화로 인해 그동안 오역 논란에 휩싸였던 사례를 실명으로 하나하나 언급했다. 현직교수 2명이 공동번역한 월터 카우프만의 ‘인문학의 미래’는 인문학 고전 영역의 문제점을 지적한 책인데, 정작 번역서에서는 헤겔의 ‘법철학’과 ‘논리학’이 ‘권리의 철학’과 ‘논리의 과학’으로, 아리스토텔레스의 ‘자연학’이 ‘물리학’으로 둔갑한 소극(笑劇)도 있다.

전문번역가들의 번역서도 오역 문제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한국번역대상까지 수상했지만 뒤늦게 오역 논란에 휩싸인 ‘르네상스의 이탈리아문화’, 독자들의 항의에 정오표를 만들어 배포한 ‘도스토예프스키 전집’, 오역 문제 제기로 2차례나 개정판을 낸 ‘장미의 이름’, 독자들의 항의에 전문번역가의 감수를 받기로 약속한 ‘다빈치 코드’….

박 교수는 국내 번역문화의 문제점이 학계가 아니라 대중에 의해 제기되고 있음을 주목하면서 학계가 시급히 인식을 전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권재현 기자 confett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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