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피플]영화‘홀리데이’서 교도소 부소장 역 최민수

  • 입력 2006년 1월 19일 03시 22분


홍진환 기자
홍진환 기자
《1988년 전국을 떠들썩하게 했던 지강헌 탈주 사건을 다룬 영화. 공권력의 횡포가 최고조에 달한 그 시대가 잉태했던 약자의 박탈감과 사회 부조리를 정면으로 들춰낸다. 이감 중이던 지강혁(지강헌의 극중 이름·이성재)과 5명의 죄수가 권총과 실탄을 탈취해 서울로 들어온다. 증오에 가까운 심정으로 지강혁을 괴롭히던 교도소 부소장 김안석(최민수)이 이들을 추적한다. 지강혁과 김안석의 동물적인 충돌이 만들어내는 섬뜩한 기운이 영화 전체를 지배한다. 연출자는 '리베라 메' '바람의 파이터'의 양윤호 감독. 수년간 사건 당사자들을 찾아다니며 수집한 현진시네마 이순열 대표의 자료집을 바탕으로 '실미도'의 김희재 작가가 시나리오를 썼다. 19일 개봉. 18세 이상.》

15일 최민수(44)를 만났다. 영화 ‘홀리데이’에서 악마의 눈빛을 가진 교도소 부소장 ‘안석’을 연기했던 그. 최근 “도그나 카우나(개나 소나) 배우 한다”는 돌발 발언과 방송에서의 반말로 집중 비난을 받았던 일부터 물었다.

▽최민수=저는 (비난에) 무감합니다. 그냥 방송에서 편안해지고 싶어요. 예(禮)나 도(道)나 어떤 룰 안에서 움직여야 한다면, 제가 예능인이라고 할 이유가 없죠. 저는 자유롭습니다. 그렇다고 질서가 없는 건 아니고…. 방송에서의 모습은 저스트(just) 저의 설정일 수 있어요. 설정을 진실로 믿으며 잣대질을 하는 것은, 저에게는 잡음이에요. “도그나 카우나” 한 것도, 누군가 예술의 십자가를 져야 할 필요가 있어서이지요. 때로는 정면승부도 필요합니다. 새의 날개가 한 쪽만 크면 날 수 있겠습니까. 양쪽 모두 공평하게 커야죠. 개소리가 있으면, 쓴소리도 필요한 거죠.

“유전무죄 무전유죄” 가진것 없는 자의 절규

▽기자=십자가라…. 많이 배웁니다. 오늘.

▽최=서로가 배우는 것이에요. 교학상장(敎學相長)이라고. 우리나라 사람들이 정이 많아요. 남 욕을 많이 하는 것도 다 정이 많아서 그래요. 근데 그 정이 정리가 안 된 정이에요. 빌딩(삼풍백화점)이 무너져도 용서를 하고, 다리(성수대교)가 끊어져도 망각을 하는, 그런 정이에요. 정이 정리가 되어야 해요.

▽기자=‘유전무죄 무전유죄’란 영화의 주제에 동감하나요.

▽최=그렇지요. 지금도 사실은 그게 유효하죠. 우리나라를 아버지에 비유하자면 ‘계부’ 아닙니까. 아직은 국민을 위한다고는 보이지가 않죠.

▽기자=‘카리스마’란 수식어를 달고 살아왔어요. ‘홀리데이’에선 뱀처럼 저열한 카리스마가 있던데….

▽최=카리스마는 음, 어떤 공간에 대한 장악력일 수도 있고, 나 자신에 대한 장악력일 수도 있어요. 궁극적인 장악력은 자유예요. 나에 대한 자유. 카리스마란 가슴에 항상 칼을 품고 사는 것이지요. 죽을 때까지 그 칼을 끄집어내서는 안 되는 것이지요. 그 칼을 끄집어내는 순간 양아치가 되어버립니다.

▽기자=지금까지 맡은 역할 중 최고 악인(惡人)인데, 남들이 모르는 자기 모습이 있다면….

▽최=예나 지금이나 나는, 내가 변하는 거를 인정을 안 하는 쪽이에요. 아주 옛날부터 내가 믿어 왔던 것을 되새김질하고 확인해 보는 거지…. 일찍 일어나서 앞마당 쓰는 것, 하루에 한 번 착한 일 하는 것, 거짓말하지 않는 것…, 어릴 적 배운 이런 것들은, 저한테는 지금도 유효해요. 그것이 나를 지키고 찾아가는 방법이에요. 얼마 전 은주(배우 이은주)가 죽었을 때도 장례식장에 차마 가질 못했어요. 떠나간 사람을 위해서 저만의 시간 속에서 기도를 드렸어요. 부모님이 돌아가셨을 때도 사람들 앞에서 눈물을 못 흘렸어요. 나중에 어금니에 금이 갔어요. 하도 꾹 참느라고. 다 제 업보죠. 배우라는 업보. 눈물도 사람들 앞에서는 자유롭게 흘리질 못하겠어요.

(이때 최민수의 휴대전화 벨이 울렸다. 그룹 ‘도어스’의 음울한 음악 ‘디 엔드’가 벨소리로 흘러나왔다. 그는 잠시 두 눈을 감았다.)

▽기자=지난해 오토바이 사고로 전치 12주의 중상을 입었지요. 오른쪽 어깨가 회복되지 않아 이 영화에도 ‘안석’이 어깨를 다친 설정이었죠. 또 탈 생각인가요?

▽최=(오토바이를) 탈 이유가 없어요. 음, 그렇다고 안 탈 이유도 없지요. (오토바이가) 나한테 다가오는 대로…. 사실 제일 위험한 건 나 자신이죠. 난 참 위험한 동물이에요. 반은 야수고, 반은 어떤 귀족과 같은 생각을 가진…. 일상적인 삶에서 나는 성격이나 말이나 느릿한데, 촬영 때처럼 원초적으로 움직일 때는 (정신이) 승압(昇壓)되는 게 굉장히 커요. 나는 샤머니즘적인 게 강해요. (영화 속) 인물에 빠지면 그 인물이 말을 걸어와요. 이번 영화를 앞두고도 ‘안석’의 외모가 어떨까 고민하고 있는데 그가 다가와 말하는 거예요. “나는 금니를 했고 머리를 뒤로 묶은…” 하고.

▽기자=스스로를 어떻게 평가하는지….

▽최=무슨 ‘소피스트’나 궤변학파적인 얘기는 아닙니다만, 제가 볼 때 (저는) 나그네예요. 나만의 길을 걷는 나그네…. 아이러니가 있어요. 나그네를 보면 참 낭만 있어 보입니다. 하지만 정작 본인은 발바닥에서 물집이 터지고 엄청나게 고통스럽기도 하지요. 저는 ‘무시로’라는 말을 다르게 해석해요. 없을 무(無), 때 시(時), 길 로(路). 즉, 길 위에는 시간이란 게 존재하지 않는다….

이승재 기자 sjd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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