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일 최민수(44)를 만났다. 영화 ‘홀리데이’에서 악마의 눈빛을 가진 교도소 부소장 ‘안석’을 연기했던 그. 최근 “도그나 카우나(개나 소나) 배우 한다”는 돌발 발언과 방송에서의 반말로 집중 비난을 받았던 일부터 물었다.
▽최민수=저는 (비난에) 무감합니다. 그냥 방송에서 편안해지고 싶어요. 예(禮)나 도(道)나 어떤 룰 안에서 움직여야 한다면, 제가 예능인이라고 할 이유가 없죠. 저는 자유롭습니다. 그렇다고 질서가 없는 건 아니고…. 방송에서의 모습은 저스트(just) 저의 설정일 수 있어요. 설정을 진실로 믿으며 잣대질을 하는 것은, 저에게는 잡음이에요. “도그나 카우나” 한 것도, 누군가 예술의 십자가를 져야 할 필요가 있어서이지요. 때로는 정면승부도 필요합니다. 새의 날개가 한 쪽만 크면 날 수 있겠습니까. 양쪽 모두 공평하게 커야죠. 개소리가 있으면, 쓴소리도 필요한 거죠.
▽기자=십자가라…. 많이 배웁니다. 오늘.
▽최=서로가 배우는 것이에요. 교학상장(敎學相長)이라고. 우리나라 사람들이 정이 많아요. 남 욕을 많이 하는 것도 다 정이 많아서 그래요. 근데 그 정이 정리가 안 된 정이에요. 빌딩(삼풍백화점)이 무너져도 용서를 하고, 다리(성수대교)가 끊어져도 망각을 하는, 그런 정이에요. 정이 정리가 되어야 해요.
▽기자=‘유전무죄 무전유죄’란 영화의 주제에 동감하나요.
▽최=그렇지요. 지금도 사실은 그게 유효하죠. 우리나라를 아버지에 비유하자면 ‘계부’ 아닙니까. 아직은 국민을 위한다고는 보이지가 않죠.
▽기자=‘카리스마’란 수식어를 달고 살아왔어요. ‘홀리데이’에선 뱀처럼 저열한 카리스마가 있던데….
▽최=카리스마는 음, 어떤 공간에 대한 장악력일 수도 있고, 나 자신에 대한 장악력일 수도 있어요. 궁극적인 장악력은 자유예요. 나에 대한 자유. 카리스마란 가슴에 항상 칼을 품고 사는 것이지요. 죽을 때까지 그 칼을 끄집어내서는 안 되는 것이지요. 그 칼을 끄집어내는 순간 양아치가 되어버립니다.
▽기자=지금까지 맡은 역할 중 최고 악인(惡人)인데, 남들이 모르는 자기 모습이 있다면….
▽최=예나 지금이나 나는, 내가 변하는 거를 인정을 안 하는 쪽이에요. 아주 옛날부터 내가 믿어 왔던 것을 되새김질하고 확인해 보는 거지…. 일찍 일어나서 앞마당 쓰는 것, 하루에 한 번 착한 일 하는 것, 거짓말하지 않는 것…, 어릴 적 배운 이런 것들은, 저한테는 지금도 유효해요. 그것이 나를 지키고 찾아가는 방법이에요. 얼마 전 은주(배우 이은주)가 죽었을 때도 장례식장에 차마 가질 못했어요. 떠나간 사람을 위해서 저만의 시간 속에서 기도를 드렸어요. 부모님이 돌아가셨을 때도 사람들 앞에서 눈물을 못 흘렸어요. 나중에 어금니에 금이 갔어요. 하도 꾹 참느라고. 다 제 업보죠. 배우라는 업보. 눈물도 사람들 앞에서는 자유롭게 흘리질 못하겠어요.
(이때 최민수의 휴대전화 벨이 울렸다. 그룹 ‘도어스’의 음울한 음악 ‘디 엔드’가 벨소리로 흘러나왔다. 그는 잠시 두 눈을 감았다.)
▽기자=지난해 오토바이 사고로 전치 12주의 중상을 입었지요. 오른쪽 어깨가 회복되지 않아 이 영화에도 ‘안석’이 어깨를 다친 설정이었죠. 또 탈 생각인가요?
▽최=(오토바이를) 탈 이유가 없어요. 음, 그렇다고 안 탈 이유도 없지요. (오토바이가) 나한테 다가오는 대로…. 사실 제일 위험한 건 나 자신이죠. 난 참 위험한 동물이에요. 반은 야수고, 반은 어떤 귀족과 같은 생각을 가진…. 일상적인 삶에서 나는 성격이나 말이나 느릿한데, 촬영 때처럼 원초적으로 움직일 때는 (정신이) 승압(昇壓)되는 게 굉장히 커요. 나는 샤머니즘적인 게 강해요. (영화 속) 인물에 빠지면 그 인물이 말을 걸어와요. 이번 영화를 앞두고도 ‘안석’의 외모가 어떨까 고민하고 있는데 그가 다가와 말하는 거예요. “나는 금니를 했고 머리를 뒤로 묶은…” 하고.
▽기자=스스로를 어떻게 평가하는지….
▽최=무슨 ‘소피스트’나 궤변학파적인 얘기는 아닙니다만, 제가 볼 때 (저는) 나그네예요. 나만의 길을 걷는 나그네…. 아이러니가 있어요. 나그네를 보면 참 낭만 있어 보입니다. 하지만 정작 본인은 발바닥에서 물집이 터지고 엄청나게 고통스럽기도 하지요. 저는 ‘무시로’라는 말을 다르게 해석해요. 없을 무(無), 때 시(時), 길 로(路). 즉, 길 위에는 시간이란 게 존재하지 않는다….
이승재 기자 sjd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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