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재기자의 무비홀릭]으이구 성급하긴… 함 어때?

  • 입력 2006년 1월 19일 03시 22분


《#상황1 우재가 연수를 집에 데려다 준 뒤 둘이 첫 관계를 가질까 망설이는 장면의 대화.

<오리지널>

○연수=덕분에 편하게 갔다 왔다. 조심해 가라.

○우재=야! 빈말이라도 한번 들어오란 말도 않냐?

○연수=그래라 그럼….

○우재=….

○연수=뭔 말이 하고 싶은 거야? 혼자 살기 힘들어?

○우재=(주춤하다가 던지듯) 자고 갈까?

○연수=(피식 웃더니) 나 그거 잘 못해.(※그거=성관계)

<재구성>

○연수=오늘 즐했다. 있다가 문자 날릴게. (※즐하다=재밌게 즐기다)

○우재=야! 부모님도 안 계신데 좀 놀다 가면 안돼? 카트나 한판 하자.(※카트=카트라이더. 인기절정의 온라인 카레이싱 게임)

○연수=오키! (※오키=오케이의 단축어)

○우재=오락보다 더 쌔끈한 거 없을까? (※새끈=좋다, ‘쿨’하다는 뜻의 속어)

○연수=으이구, 성급하긴….

○우재=함 어때? (※함=‘한번’의 단축어)

○연수=너 선수야? (※선수=성경험이 많은 사람)》

대학친구 우재(설경구)와 연수(송윤아)가 7년 뒤 재회하면서 피어나는 미묘한 사랑의 감정을 절제된 기법으로 풀어 낸 ‘사랑을 놓치다’(26일 개봉). 두 사람의 사랑 키워드는 사랑해도 사랑한다고 말 못하는 수줍음과 망설임이다. 이런 느리고 답답한 사랑을 요즘 스무 살이 공감할 수 있을까. 요즘 젊은이들이 영화에서 가장 납득하기 힘들 것으로 보이는 장면은 우재와 연수의 성 관계 전후. 30대 주인공들이 나누는 대사와 행동을, 요즘 스무 살 남녀의 대사와 행동으로 바꿔 보았다. 우리는 이렇게 연령대로 다른 사랑을 하는 시대를 살고 있는 것이다.

#상황2 연수와 동침할까 하던 마음을 접고 집으로 걸어가던 우재. 다시 발길을 돌려 연수에게 들이 닥치는 장면에서의 행동.

<오리지널>

○ 걸어가던 우재. 갑자기 발길을 돌린다. 문이 벌컥 열리고 우재가 성큼성큼 들어온다. 놀란 얼굴의 연수. 멀뚱멀뚱 쳐다본다. 결심한 듯한 우재, 연수의 얼굴을 부여잡고는 키스를 한다.

○ 이윽고 장면이 바뀌면 침대에 누워 있는 연수, 옆에는 우재가 잠들어 있다. 우재의 얼굴을 응시하는 연수, 손가락을 들어 우재의 얼굴선을 따라 허공에 그림을 그린다.

○ 아침이 되자, 이미 싱크대 앞에 선 연수. 식사준비를 한다. 뒤늦게 깨어난 우재가 옷을 갖춰 입고 방에서 나온다. 가스레인지 위에 찌개가 모락모락 김을 내뿜으며 끓고 있다.

<재구성>

○ 걸어가던 우재. 문득 서서 휴대전화 문자를 연수에게 날린다. ‘오늘 나 진짜로 하고 싶어….’ 연수, 야릇한 미소를 흘리며 다음과 같은 답 메시지를 보낸다. ‘ㅎㅎ.(기분 좋은 웃음과 동의를 표시하는 인터넷 채팅 기호)’ 메시지를 확인한 우재는 만면에 확신에 찬 웃음을 띠며 문을 열고 연수에게 달려온다. 연수의 눈에 가벼운 키스를 한번 한 뒤 다시 입술로 표적지를 옮긴다.

○ (관계 후) 에스프레소 커피를 마신 탓인지 잠이 오지 않는 연수. 폰카를 들어 옆에 자고 있는 우재를 찰칵 찍는다. 그리고 사진 밑에 메모를 쳐 넣는다. ‘우재. 2006년 1월 19일.’ (※폰카=휴대전화에 달린 카메라)

○ 우재. 배고픔 때문에 잠에서 깬다. 옆에 곯아떨어진 연수를 귀찮은 듯 흔들며 말한다. “야! 밥 없냐?” 연수, 눈을 비비며 대답한다. “저기 냉장고 위에 피자가게 번호 붙어있어. 피자 시켜. 참, 콜라 서비스 되나 물어 보고.”

이승재 기자 sjd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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