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 미래로 미래로]<5>이탈리아 볼로냐

  • 입력 2006년 1월 20일 03시 0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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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붕이 있는 보행로인 ‘포르티코’는 볼로냐 시 특유의 건축구조다. 도심을 둘러싸고 40여 km 가까이 조성된 포르티코는 햇빛을 가려 주고 눈비를 막아 준다. 사진 제공 이영범 교수
지붕이 있는 보행로인 ‘포르티코’는 볼로냐 시 특유의 건축구조다. 도심을 둘러싸고 40여 km 가까이 조성된 포르티코는 햇빛을 가려 주고 눈비를 막아 준다. 사진 제공 이영범 교수
이탈리아 중부의 유서 깊은 도시 볼로냐. 12세기에 건설돼 여전히 도심 한가운데 우뚝 선 두 개의 탑 아시넬리(97m)와 가리센디(45m)는 이 도시의 상징적인 이정표다. 이곳을 기점으로 탑 주변의 좁은 골목길로 한 발만 들어서면 마치 피노키오를 만든 제페토 할아버지를 만날 것만 같다. 손때 묻은 그림을 손질하거나, 구두나 피혁 제품을 만들고, 금은 보석을 세공하는 작은 공방들이 골목을 가득 채우고 있기 때문이다.

세계 주요 도시가 으레 도심 뒷골목의 공동화(空洞化) 현상에 골머리를 앓고 있는 것과 달리 볼로냐 도심 뒷골목은 이처럼 개성 있는 공방들 덕분에 활력이 넘쳐난다. 인구 42만 명의 볼로냐 시는 중소 규모 공방들이 세계 수준의 명품을 생산하면서 이탈리아 제2의 부자 도시로 발돋움했다. 세계 최초의 대학인 볼로냐대가 있는 역사도시로만 알려졌던 볼로냐가 어떻게 생산력이 왕성한 ‘21세기형 창조 도시’로 탈바꿈할 수 있었을까.

○ 공동화된 도심을 문화 창조 공간으로

볼로냐에는 1970년대부터 도시 외벽(옛 성곽) 밖으로 펼쳐진 주거지와 주변 농촌의 경계지점에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춘 패키지(자동포장) 기계제조 기업 등이 들어섰다. 그러나 교외지역이 급격히 팽창하면서 역사적 건축물이 몰려 있는 도심은 공동화되기 시작했다. 시는 ‘역사적 시가지 보존과 재생’이라는, 소위 ‘볼로냐 방식’의 도심 재생전략을 짰다. 1985년부터 도심을 6구역으로 나눠 역사적 건축물의 보존과 복원, 활용방안을 세밀하게 수립한 것.

시청 앞 마조레 광장에서 ‘두 개의 탑’과 볼로냐대로 이어지는 축을 따라 뒷골목 구석구석에서 생겨난 예술공방형 기업들은 도심 재생의 가장 큰 힘이 됐다. 특히 볼로냐가 유럽의 문화수도로 지정된 것을 계기로 추진한 ‘볼로냐 2000 프로젝트’는 도심 건축물의 외관은 보존하되 내부는 첨단 문화공간으로 바꾸었다. 옛 주식거래소는 이탈리아 최대의 디지털 도서관으로 변신했고, ‘팔라초 디 렌초’ 등 중세 귀족들의 저택은 대규모 이벤트와 회의를 열 수 있는 시설로 복원됐다. 이 같은 노력으로 볼로냐는 국제아동도서전, 체르사이에(타일 인테리어 국제전시회) 등 세계적인 컨벤션과 이벤트를 개최하는 박람회 도시로 발돋움했다.

옛 그림을 복원하는 볼로냐 인페르노 거리의 ‘누오바 보테가 델 루초’ 공방.

○ 소규모 공방을 키워라

작지만 강한 공방형 중소기업을 거미줄처럼 엮는 ‘문화 창조도시’ 전략은 볼로냐만의 세계적인 명품을 낳았다. 공기주머니를 밑창에 넣어 발가락과 그 주위 부분이 신발 안에서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게 하는 ‘볼로냐 공법’으로 만들어진 수제 구두 ‘테스토니’와 ‘브루노 말리’ 등은 그 대표 격이다.

작은 공방형 기업들은 CNA라는 네트워크를 형성해 전 세계를 상대로 공동 기획, 홍보, 마케팅을 펼치며 사업을 확장해 나간다. 1945년 창설된 볼로냐 시의 CNA에는 현재 2만1000여 명의 기능인이 가입해 있다.

CNA 산하 예술기능인직업학교(ECIPAR)의 매니저 루카 로베르시(42) 씨는 “공방형 기업의 정착이 가능하도록 시가 도심 재생전략을 짜고 공동 마케팅, 금융, 박람회 전시 지원 등을 해 주는 것이 큰 도움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볼로냐=이영범 경기대 건축전문대학원 교수

▼볼로냐에 가면 마냥 걷고 싶어져요▼

이탈리아 볼로냐는 마냥 걷고 싶은 충동을 갖게 하는 도시다. 눈이 내려도, 비가 와도, 따가운 햇살이 내리쬐도 보행자들은 마치 건물 복도를 걷고 있는 듯 편안하게 걸을 수 있다.

이는 볼로냐 도심에 있는 모든 건물의 1층마다 처마가 보도까지 뻗어 나가 전 시가지를 회랑처럼 구석구석 연결해 주기 때문이다. 아치형의 이 독특한 회랑은 ‘포르티코(portico·주랑·柱廊)’라고 불린다. 투영되는 빛과 그림자를 통해 건물의 미학적 깊이까지 더해 주는 포르티코는 로마 피렌체 밀라노 등 이탈리아의 다른 도시에서도 볼 수 없는 볼로냐만의 도시 명품이다. 그 가치가 더욱 빛나는 것은 시민들이 합의하에 포르티코를 완벽하게 보존하는 도시 계획을 결정했기 때문이다.

도심 전 구역에 조성된 포르티코는 오래된 건축물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다. 도심에 새로 건물을 지을 경우 건물 사유지의 일부를 개조해서라도 포르티코를 만드는 것을 의무화했다. 이 때문에 볼로냐의 포르티코는 건물마다 그것이 생겨난 시대의 유행을 반영해 각각 모양이 다르다. 꾸밈없이 소박한 중세풍, 섬세한 고딕풍, 화려한 르네상스 양식, 중후한 바로크풍, 단순한 모양으로 지어진 시멘트 아케이드까지…. 포르티코는 역사 속에 담긴 도시의 발자취를 하나의 길로 연결하는 동맥으로 자리 잡고 있다.

볼로냐를 찾았을 때 거리의 상가는 신년 세일 중이었다. 쇼윈도마다 ‘SALDI’(‘세일’이라는 뜻의 이탈리아어)라는 안내문이 붙은 상가에는 쇼핑객들의 발걸음이 이어졌다. 이탈리아 디자인 명품이 진열된 쇼핑몰은 이 포르티코 지붕 아래서 행인들을 맞았다. 건축물인지 보도인지 구분이 안가는 포르티코 아래에서는 보행자와 건물이 서로 따스하게 소통한다. 포르티코 주변에는 문을 활짝 열어 놓고 피자를 구워 파는 가게들이 늘어서 있다. 한여름에는 포르티코 그늘 아래 펼쳐진 야외 테이블에서 사람들이 한가로이 차와 와인을 마신다.

볼로냐에서 음대를 졸업한 한국인 유학생 황 루디아 씨는 “예술적으로도 빼어나고, 기능적으로도 편리한 포르티코 덕분에 볼로냐는 시민들의 감성이 살아 숨쉬는 도시로 느껴진다”고 말했다.

볼로냐=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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