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나이 든 사람이 어느 날 피에르 신부를 붙들고 절망감을 토로했다. “눈이 멀어 더 이상 봉사를 할 수가 없어요.”
그러자 피에르 신부(사진)가 말했다. “그건 말도 안 됩니다. 당신 인생의 마지막 1분까지도 당신은 식기를 들고 오는 친구에게 미소를 지을 수 있을 것이고, 당신의 미소가 그날 하루 동안 그가 해낼 몫의 일을 할 수 있게 돕는다면 당신은 이미 봉사를 한 것입니다.”
‘살아 있는 성자’로 불리는 프랑스의 아베 피에르 신부. 집 없는 이들을 돌보는 엠마우스 공동체를 만들어 소외된 이웃을 위해 평생을 바쳐온 그에게 인생은 ‘인간들 사이에 난 길’이다. ‘우리가 예기치 못한 열매를 따기도 하고 우리가 모르는 그 누군가가, 그것도 한 사람이 아닌 여러 사람이 우리를 따게 될’ 길인 것이다.
이 책은 80여 명이 쪽지에 적어 보낸 삶의 고민들에 대한 피에르 신부의 응답이다. 올해 94세인 노신부는 교훈적 설교 대신 자신이 살아온 궤적과 혼란을 고스란히 드러내며 고독, 신성함, 사랑, 나이 듦, 민주주의와 인류에 이르기까지 삶의 이유에 대한 진솔한 생각을 털어놓았다. 저자가 어떤 사람인지를 보여 주는 일화가 있다. 엠마우스 공동체에 묵고 있던 20여 명이 굶게 되자 피에르 신부는 사람들 몰래 파리 대로에서 구걸에 나섰다. 그는 많이 힘들어 눈물을 흘리면서도 동시에 마음 깊은 곳에서 일종의 환희를 느꼈다고 고백한다.
“내 안의 악동 같은 면이 그것을 원했다. 아무도 하지 않는 일, 부르주아들이 아주 끔찍하게 여길 그런 짓을 할 수 있을 만큼 나 자신이 자유롭다고 느끼는 것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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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에르 신부에게 고통과 사랑은 짝패다. 하나가 없으면 다른 하나도 없다. 살아 있음이 고통스러울수록 자유에 대한 그의 확신은 커져 가고, 죽기를 소망하면서도 매일 아침 희망을 꿈꾼다. 책의 행간마다 빛과 그림자를 동시에 끌어안는 그의 모습이 드러나 보인다.
‘인생의 학교에는 선택의 여지가 많지 않다. 사랑하는 법을 배우든가, 괴물이 되든가.’ 그의 선택은 사랑이었다. 상실감을 달래 줄 타인에 대한 사랑에서부터 인간의 자격을 부정당한 사람들 편에 서서 분노하는 사랑까지. ‘산다는 것은 사랑하는 법을 배우고 영원한 사랑과의 영원한 만남을 준비하기 위해 주어진 약간의 시간일 뿐이다.’ 원제 ‘Testament’(2005년).
김희경 기자 susann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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