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큰바람 불고 구름 일더니<671>卷七. 烏江의 슬픈 노래

  • 입력 2006년 1월 21일 03시 1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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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박순철
그림 박순철
“대왕께서는 그렇게 속고도 한왕 유방을 모르십니까? 자신이 불리하면 금방 숨이라도 넘어가는 것처럼 대왕의 발밑을 기다가도 돌아서면 대왕의 발뒤꿈치를 물려 드는 것이 바로 유방입니다. 거기다가 꾀 많은 장량과 엉큼한 진평이 곁에 붙어 있는데, 그 약조를 어찌 믿을 수 있겠습니까? 며칠 전에 돌려보낸 후공도 걱정입니다. 어쨌든 그도 한왕이 보낸 사람, 우리 진채의 사정을 소상히 보고 갔는데 그냥 모르는 척 할 수 있겠습니까?”

그때 그런 종리매의 말을 뒷받침하기라도 하듯 환초(桓楚)가 나와서 말했다.

“오늘 새벽 후진(後陣)으로부터 들어온 전갈에 따르면 어젯밤부터 수상쩍은 마필이 따라붙고 있는 기척이 있다고 합니다. 한군(漢軍)이 보낸 탐마(探馬)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그 말을 듣자 패왕의 얼굴이 금세 분노로 벌겋게 달아올랐다.

“유방 이 아비 셋 가진 종놈이 이럴 수가 있느냐? 아니 되겠다. 모두 싸울 채비를 갖춰 서쪽으로 돌아가자. 내 이번에는 반드시 유방 그놈의 질긴 목을 잘라 멀리 팽성으로 돌아갈 것도 없이 천하대세를 결판 짓겠다!”

그러면서 칼자루를 움켜잡았으나, 오래 전쟁터를 누빈 터라 감정에만 휘둘리지는 않았다. 남다른 장수의 자질로 이내 평정을 되찾은 패왕은 군사를 남쪽으로 돌려 양하(陽夏)로 향하게 했다. 양(梁) 땅을 남북으로 짧게 가로질러 바로 서초 땅으로 접어들기 위함이었다.

양하는 진(陳) 북쪽에 있는 현(縣)으로 팽월이 휘젓고 다니는 양 땅을 막 벗어난 곳이었다. 거기서 팽성까지 5백리는 서초 경내(境內)라고 할 수 있었다. 패왕 항우가 한나라 대군이 뒤쫓고 있는 것을 확연히 알아차린 것은 바로 그 양하 부근이었다. 멀리 북쪽 하늘에 아련히 먼지가 피어오르는 것을 보고 패왕이 좌우를 돌아보며 말했다.

“이미 떨쳐버리고 가기 어렵다면 우리가 먼저 싸움터를 골라야겠구나. 여기서 적의 예기를 꺾어 두어야 서초 땅이 한군에 짓밟히는 욕을 면하겠다.”

그리고는 양하에 군사를 멈추게 한 뒤 사방을 돌아보며 크게 싸울 만한 곳을 찾았다.

오래잖아 패왕의 전투 감각에 꼭 들어맞는 싸움터가 나타났다. 양하 서남에 있는 고릉(固陵)이란 큰 마을 부근이었다. 그 고릉에서 홍구 쪽으로 대군을 끌어들이기 좋은 들판이 펼쳐져 있고, 또 그 들판 곳곳에는 숲과 야트막한 언덕이 있어 군사를 매복시키기에도 좋았다. 패왕은 양하 현에 주동(周동)이란 장수와 5천 군사를 남겨 한군을 꾀어낼 미끼로 삼고, 자신은 고릉으로 물러나 무시무시한 함정을 파고 한왕이 걸려들기를 기다렸다.

한편 대군을 이끌고 패왕을 뒤쫓던 한왕은 초군이 양하 성안에 머물자 한군도 양하 북쪽 30리 되는 곳에 멈추게 했다. 하지만 자신이 거느린 군사만으로는 싸움을 시작할 자신이 없었다. 한신과 팽월이 오기를 기다려 패왕과 결판을 낼 심산으로 진채를 든든하게 세우게 했다. 그때 번쾌가 한왕을 찾아와 말했다.

“제가 탐마를 풀어 알아보니 적의 대군은 어젯밤에 남쪽 고릉으로 내려가고 양하 성안에 남은 초군은 그리 많지 않다고 합니다. 거기다가 일껏 키워 온 우리 대군의 사기를 여기서 머뭇거려 꺾이게 할 수는 없습니다. 제게 군사 1만만 주시면 내일 아침 양하 성을 쳐서 적의 형세를 가늠해 보겠습니다.”

한왕도 그 말을 듣고 보니 한번 해볼 만한 일 같았다.

글 이문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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