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사회]인간은 도시 만들고…‘도시, 인류 최후의 고향’

  • 입력 2006년 1월 21일 03시 1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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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 인류 최후의 고향/존 리더 지음·김명남 옮김/544쪽·2만3000원·지호

도시는 오래된 시공간적 현상이다.

인류가 거둔 모든 성취와 인류가 겪은 모든 실패가 도시의 실체를 이루는 건물들에, 도시의 생명을 이루는 문화 속에 오롯이 담겨 있다. 미국의 시인 롱펠로가 찬미하듯 ‘(도시는) 돌에서 피어난 백합’이다.

도시는 탄생 이래 모든 물리적 힘과 문화적 힘을 거머쥐었다. 그 덕분에 인간 행동의 지평이 넓어지고 일상의 속도는 빨라졌다. 도시의 건물들, 기념물이나 기록보관소, 공공기관과 같은 물적 기반을 통해 인류는 한 세대의 문화 자산을 다음 세대로 넘겨주었다.

도시는 우리 인간의 존재를 규정하는 의식과 무의식의 영역에 깊숙이 영향을 미친다. 처칠의 말을 빌리자면 ‘인간은 도시를 만들고, 도시는 인간을 만든다’.

사람들이 음식과 문화, 안전을 도시에 기대면서부터 선택된 개인들의 화려한 무대가 펼쳐지기 시작했다. 도시가 있었기에 미켈란젤로는 그림과 조각에 전념할 수 있었고, 뉴턴과 아인슈타인은 우주의 신비를 명상했으며, 히틀러는 세계 정복의 야심을 키웠다.

고대 로마 제정기에 세워져 시민의 오락시설로 이용된 콜로세움(왼쪽)과 마천루가 솟은 뉴욕시내. 동아일보 자료 사진

이 책은 도시의 역사와 도시의 본성, 인간과 도시가 맺어 온 상호작용의 내력, 미래의 기회와 위협을 다룬다. 도시란 무엇인가? 도시는 어떻게 자라나고 어떻게 유지되며, 어떻게 발전하는가? 어떻게 쇠퇴하고 소멸하며 또 어떻게 스스로를 치유하는가?

작가이자 포토저널리스트인 저자는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 수메르에서 솟아난 인류 최초의 도시들에서 현재의 메갈로폴리스에 이르기까지 6000여 년의 시간을 가로지른다.

고대 그리스의 도시국가들, 제국의 첨병이던 로마의 도시들, 상인들의 손아귀에 포섭되어 간 중세 유럽의 도시들을 누빈다. 산업화된 런던, 풍운의 도시 베를린, 신고전주의적인 파리, 그리고 포스트모던한 로스앤젤레스…. 그 다양한 도시 풍경의 지리학적, 건축학적 형태를 날카롭게 포착한다.

이 책에서 가장 흥미로운 대목은 ‘도시 농업’에 대한 얘기가 아닐까. 도시에서 농사를 짓다니? 놀랍게도 현대 도시에서 가장 큰 단일 업종은 농업이다. 농업은 이미 수백만 도시 인구의 생명줄이 되었으며 빈곤층의 식량원이자 수입원으로 자리 잡았다.

모스크바에서는 전체 가구의 3분의 2가 먹을거리를 재배한다. 런던은 매년 약 1만6000t의 야채를 생산한다.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미국에서조차 전체 농업 생산가치의 3분의 1이 대도시에서 나온다.

이 책에서 생태학은 중요한 요소다. 저자는 도시를 지구환경이라는 큰 맥락에서 살펴보며 ‘생태발자국(ecological footprint)’의 개념을 도입한다.

오늘날 도시는 블랙홀에 가까워지고 있다. 자신의 몸피보다 훨씬 넓은 지역의 물자들을 남김없이 끌어와 먹어 치우는 위험한 기생물이다. 도시의 넓이는 지표면의 2%에 불과하지만 세계 자원의 75% 이상을 소비하고 있다.

면적 1500km²의 런던이 그 물자 수요와 쓰레기 처리를 위해 18만 km²에 달하는 토지를 필요로 한다. 런던 넓이의 120배! 이게 런던의 ‘생태발자국’이다. “2030년이 되면 인류의 3분의 2가 도시에서 살게 될 것이다. 이들 도시를 미국 수준으로 먹여 살리려면 지구만 한 행성이 세 개는 더 필요하다.”

성경은 바빌론을 ‘이 땅의 창녀들과 모든 가증스러운 것들의 어미’라고 묘사했다. 예나 지금이나 사람들은 상황이 나빠지면 도시를 탓하곤 한다. 도시는 생래적으로 나쁜 어떤 것이다? 저자는 고개를 가로젓는다. 숱한 난제에도 도시는 살아남았으며 앞으로 더욱 많은 이의 고향이 될 것이라고 내다본다. 도시는 인간이 스스로의 문제들을 풀기 위해 고안해 낸 최고의 발명품인 것이다.

인류는 환경에 적응할 수 없을 때에는 환경을 맞게 바꾸었다. 청동의 발견은 석기시대의 딜레마를 풀었다. 그렇듯 미처 기대하지 못했던 수많은 발견이 인류의 발길을, 그리고 도시의 성장 과정을 수놓으면서 오랜 세월을 견디며 오늘에 이르렀다. 앞으로 도시의 생활방식은 좀 더 생태적인 모습으로 진화하지 않을까?

“세상은 완벽하지 않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에게 도시는 아직 중요하다. 그들에게 도시는 문제가 아니라, 여전히 해결책인 것이다!” 원제 ‘Cities’(2004년).

이기우 문화전문기자 keywo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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