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빨리 날쌔게 얼른 금세 당장 냉큼 선뜻 후딱 싸게
잽싸게 속히 즉각 곧 곧장 바로 이내 퍼뜩 급히
붐비지 않는데도 붐비는 말들
언젠가부터 사랑할 시간은 너무 적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 흩어지는 사람들처럼
너무 짧은 만남에 씨 맺지 못하고 꽃만 피워 시든다
고속 초고속 급행 빠름 재빠름 날쌤 날램 순식간
바쁘지 않은데도 바쁜 말들
느릿느릿 걸을 시간은 이제 없다
고속도로 위를 내닫는 사람들처럼
시작과 끝만 있을 뿐
경치와 나뭇잎의 자잘한 숨소리는 없다
뜨거운 햇살 속에 등 구부린 농부도 없다
점과 점을 연결하는 선의 세상
생략된 그물 위로 붐비는 말들
재빨리 날쌔게 얼른 금세 당장 냉큼 선뜻
- 시집 '저녁나무'(모아드림) 중에서
신이 우리에게 칠십 년 인생을 비행기로 통과하는 것과 삼십 년 인생을 걸어서 통과하는 것 중에 하나를 선택하라고 한다면, 대부분 수명은 짧더라도 삼십 년 걷는 생을 선택하지 않을까? 아니, 누가 생을 ‘통과’하려고 하겠는가? 생은 ‘누리는’ 것이다. 경치를 바라보며, 나뭇잎의 섬세한 잎맥을 매만지며, 뺨에 닿는 바람의 숨소리를 들으며 춤추듯 걷는 것이다. 속도는 풍경과 추억을 지워버린다. 삶에서 그것을 제거한다면, 삶의 대부분을 잃는 것이 아닌가. 사랑은 느리고 더디게 대상을 음미할 때만 가능하다.
―시인 반칠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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