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흘러가는 삶에 대한 애가(哀歌)다.
푸른 회색빛의 신비로운 눈동자를 가진 소녀‘치요’(장쯔이)는
날 때부터 게이샤는 아니었다. 가난 때문에 교토로 팔렸던 운명을 거스르려 애를 써보지만, 결국 게이샤 집에 남아 하녀가 된다.》
‘내 삶은 이렇게 흘러가는 것일까.’ 어느 화창한 봄날, 육교 위에서 벚꽃 구경 나온 사람들을 눈물 젖은 눈으로 바라보던 그녀에게 중년의 사업가(와타나베 겐·‘라스트 사무라이’ 주인공이었던 바로 그 남자)가 자두와 빙수를 사주며 위로한다.
그의 곁에 서 있던 아름다운 게이샤들. 세상에는 친절함도 있다는 걸 알려준 사업가에게 반한 치요는 그를 다시 만나고 싶은 생각에 게이샤가 되기로 한다. 우여곡절 끝에 당대의 게이샤 마메하(양쯔충) 문하에 들어가 안무 음악 미술 화법 등 혹독한 교육을 받은 치요는 최고의 게이샤 ‘사유리’가 되어 사교계에 화려하게 데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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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는 ‘가질 수 없는 것들에 대한 이야기’다. 숱한 남자들의 구애를 거부하고 오직 한 남자에 대한 사랑만을 간직한 사유리는 결국 그를 만나게 되지만, 애타는 연모의 정을 감춰야 한다. 그녀가 차를 우리고 사케를 따르고 춤을 추고 오비(기모노의 허리띠)를 매는 건 오직 사업가를 위해서였건만, 정작 사업가는 자신을 구해준 생명의 은인이자 친구인 노부(야쿠쇼 고지·섈 위 댄스 주인공이었던 바로 그 남자)가 사유리를 연모하자 자신을 향한 사유리의 마음을 받아 주지 않는다. 세상의 모든 남자와 세상의 모든 아름다움을 가질 순 있어도 정작 가장 갖고 싶었던 것을 가질 수 없는 삶의 역설 앞에서 사유리는 절망한다.
이 영화는 ‘아름다움’에 대한 이야기다. 여기서 말하는 아름다움은 감춤이요, 절제이며 억압에서 비롯된다. 제작자 스티븐 스필버그, ‘시카고’의 롭 마셜 감독은 자신들의 유전자에는 없는 동양적 아름다움이자 일본 미학의 정수인 ‘감춤’의 미학을 창녀가 아닌 예인(藝人) 게이샤를 통해 충실한 영상으로 만들었다.
독특하고 화려한 화장법, 현란한 기모노들, 1930, 1940년대 어둡고 축축한 일본 교토의 눈 내리는 골목길과 좁은 다다미방, 다도, 춤, 음악도 아름답지만 경쟁관계인 미인들의 암투, 부유한 후원자들을 교묘하게 유혹하는 그들의 언어조차 아름답다.
‘우리 고객들은 대부분 정략결혼의 희생자들이라 우리에게서 위안을 얻고자 하지. 그럴 땐 이렇게 살짝 손목을 보여줘. 속살을 조금 보여주는 것만으로도 큰 기쁨을 줄 수 있어. 곁에 앉을 땐 한순간 다리가 살짝 닿게 앉아. 물론 우연을 가장해서.’(마메하)
영화는 아름답지만 차갑다. 인물들의 심리 묘사에 소홀한 탓이다. ‘혼’이 없는 아름다움은 박제된 아름다움이다. 게이샤로 나오는 중국 여배우 3인방 장쯔이, 궁리, 양쯔충을 한꺼번에 만나는 일은 즐거운 일이다. 질투와 퇴폐를 오가는 공리와 성취와 허무를 오가는 양자경의 표정은 일품이다. 그러나 장쯔이의 젊음과 비교하여 두 사람의 얼굴에서 세월을 확인하는 일은 쓸쓸한 일이다. 2월 2일 개봉. 15세 이상 관람가.
허문명 기자 angelhu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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