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자체 마케팅 최고 브랜드는 文人”

  • 입력 2006년 1월 26일 03시 00분


작가 이외수 씨는 지난주 강원 화천군 상서면 다목리의 ‘감성마을’로 이사했다. 그는 춘천시에서 1965년부터 살아와 ‘춘천 하면 떠오르는 인물’ 가운데 한 명으로 꼽혀 왔는데 환갑의 나이에 근거지를 옮겨 버린 것이다.

여기에는 정갑철 화천군수의 ‘캠페인’이 작용했다. 2003년 이외수 씨가 춘천시 교동의 자택 주변 환경이 다소 소란스러워져서 이사할 곳을 찾는다는 소식을 들은 정 군수는 화천군 정책기획단 보좌진과 함께 이 씨를 찾아가 ‘삼고초려’했다. 정 군수는 후보지를 다섯 군데나 제시했다. 이 씨는 “정 군수가 ‘원하는 곳을 고르면 집필실과 연수관 야외무대를 지어 주겠다’고 제의해 가장 작지만 고적한 데를 골랐다”고 말했다.

지방자치단체들의 ‘문인 모시기’ 경쟁이 치열하다. 자기 지역과 연고가 있는 지명도 높은 문인들을 ‘지역 브랜드’를 높일 상징으로 모시기 위해 시장 군수들이 발 벗고 뛰고 있는 것이다.

문인들은 가수나 배우에 비해 도시적 소비문화나 무국적 문화의 이미지가 덜하다. 그러면서도 화가나 음악가보다는 대중적 친화력이 높다. 떴다가 금방 지는 대중문화 스타들과는 달리 수준 높은 고정 팬들이 많고 작품의 영향력은 세대를 넘어 계속된다. 지역의 이미지를 고급화하는 데 문인들만큼 좋은 상징이 없다는 게 지자체 홍보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경남 통영시의 진의장 시장은 17일 하루를 도로에서 보냈다. 오전에 통영을 출발해 강원 원주시 토지문화관에서 원로 작가 박경리 씨를 자동차에 태우고 이날 저녁 서울에서 열린 ‘예향(藝鄕) 통영을 생각하는 사람들의 모임’ 장소로 모셔갔다. 진 시장은 한동안 고향 통영을 찾지 않던 박 씨를 지난해 두 차례 초청해 큰 주목을 받았다. 조문수 통영시장 보좌관은 “박경리 선생님의 육성 연설을 녹음해 두고 자료들을 모아두고 있다”며 “문화관을 짓게 되면 전시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서울에 사는 시인 고두현 씨는 지난해 11월 5일 경남 남해군의 ‘물미해안’에 갔다가 하영제 남해군수가 군청 직원들과 함께 직접 마중 나와 있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고 씨가 지난해 8월 펴낸 시집 ‘물미해안에서 보내는 편지’의 독자들과 함께 ‘문학기행’을 나선 길이었는데, 하 군수가 “남해를 알려 주어 고맙다”며 마중을 나온 것. 남해군은 11∼12월 네 차례 열린 이 문학기행단의 현지 숙박비까지 전액 지원했다.

전남 장흥군의 김인규 군수는 이곳 출신 원로 작가인 이청준 씨의 생가 복원을 지난해 지원한 데 이어 이 씨의 작품 ‘눈길’의 배경이 된 길을 복원할 계획이다. 김 군수는 최근에는 이 씨의 고향인 회진면 진목리에 만들어지고 있는 이 씨의 작품 ‘청학동 나그네’를 원작으로 한 임권택 감독 영화 ‘천년학’의 세트장 건설 현장에 수시로 드나들고 있다.

작고한 저명 문인의 생가나 작품에 등장하는 장소를 관광자원화하는 작업도 전국 곳곳에서 진행되고 있다. 경기 양평군은 황순원의 단편 ‘소나기’의 무대인 서종면 수릉리에 ‘소나기마을’ 조성 공사를 2월에 시작할 계획이다.


권기태 기자 kk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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