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보가 한 달 전 연극인들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압도적 지지로 ‘차세대 배우 1위’에 꼽힌 그가 ‘잘린’ 이유는 결코 연기를 못해서는 아닐 것이다. 또 그가 출연한 연극 ‘에쿠우스’를 직접 대학로까지 가서 보고 캐스팅했던 임 감독의 뜻도 아니었을 것이다. 임 감독은 지금까지 여러 인터뷰에서 “좋은 배우를 찾았다”고 말해왔다.
26일 임 감독은 캐스팅 취소 사실 여부를 묻자 “그렇게 될 것 같다. 회사(영화사)에서는 조금이라도 (영화에) 이로울 수 있는 것이면 최선을 다해 보려고 그러는 것 아니겠느냐”라고만 답했다.
김영민이 ‘잘린’ 이유는 결국 그가 ‘스타’가 아니기 때문이다. ‘서편제’의 속편에 해당하는 ‘천년학’은 거장 감독의 기념비적인 작품임에도 ‘스타 캐스팅이 아니다’라는 이유로 충무로에서 투자를 받지 못해 무산 위기까지 갔다가 간신히 올 3월 크랭크인하게 된 데서도 김영민이 퇴짜 맞은 이유를 짐작할 수 있다.
제작 무산이라는 ‘영화 인생 최대의 위기’를 겪은 데 이어 직접 뽑은 주연 배우가 바뀌는 것을 지켜보는 노장 감독의 마음도 편하지는 않겠지만, 충무로의 ‘흥행 논리’로 인해 유망한 젊은 배우가 입은 상처 역시 적지 않을 것이다.
충무로에서는 그가 ‘신인’이고 ‘무명’일지 몰라도, 대학로에서 그는 ‘청춘예찬’ ‘에쿠우스’ 등을 통해 연기력을 이미 인정받은 기대주다. 그는 “스타가 없어 ‘천년학’ 투자가 안 된다”는 말이 들려도 좋은 연기로 자신의 능력을 증명하고자 묵묵히 배역 연기에 필요한 북 치는 일만 배우러 다녔다. 투자가 안 돼 크랭크인이 늦어지는 상황에서도 “약속을 이미 했으니 감독님 영화가 우선”이라며 쏟아지는 대학로의 연극 제의를 거절한 채 북채만 쥐고 있던 그였다.
그러나 김영민은 개런티 한 푼 받지 못한 채 ‘캐스팅 취소’를 맞았다. 출연 ‘약속’을 받고 언론에 캐스팅 사실도 알려졌지만 그동안 투자자가 없어 정작 ‘계약’은 못한 탓이다.
“언제쯤 대학로에서 다시 볼 수 있겠느냐”는 질문에 김영민은 “우선은 이걸(‘천년학’의 상처) 좀 털고 가야 할 것 같다”고 했다. 대답 속에 ‘좋은 배우’보다는 ‘유명 스타’를 더 요구하는 충무로에서 그동안 그가 겪었을 아픔이 짙게 묻어났다.
강수진 기자 sjk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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