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일의 연속이다. 행복한가.
“행복은 상대적인 것 아닌가. 최근에 누군가에게서 ‘모든 사람에게는 이생에서 자기 할 몫이 있는데 그 몫을 다하고 가는 게 가장 행복한 것’이라는 말을 들었다.”
그는 “겉보기에 화려하고 돈도 많이 벌어 최고라고 하겠지만, ‘보이는 게 없기’는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라며 “오히려 (사는 게) 더 어려워진다”고 했다.
―데뷔한 지 13년째다. 지치지 않나.
“이쯤에서 안주하고 싶은 생각이 나라고 왜 안 들겠나. 그런데 안주하면 과연 행복해질까.”
―잘생기고 착해 주변 사람들한테 인기가 많다고 들었다.
“(웃으며) 착하다는 칭찬이 때로 나를 옥죈다. 언뜻 ‘도덕적’이라는 말과 비슷한데 배우가 꼭 도덕적일 필요가 있는가에 대해서는 의문이다. 도덕적이기보다는 팬들에게 신뢰를 줘야 한다는 생각으로 산다.”
―‘바른 생활 사나이’라는 이미지는 일종의 ‘설정’인가.
“(웃음) 하고 싶은 것을 억누르며 산 적은 없다.”
―태풍은 극장에서 거의 다 내렸더라.
“기대가 컸던 영화였다. 450만이라는 관객 수는 절대 적은 수는 아니지만, 기대치에 못 미친 것은 사실이다. 아직 뭐라 이야기할 단계는 아니다.”
―무극의 경험은 어땠나.
“낯선 별에 떨어진 외계인처럼 외롭고 힘들었지만, 좋았다. 내가 왜 이런 곳에서 생고생을 하고 있나 짜증이 이어지던 어느 날이었다. 새벽녘에 텐트 밖으로 나왔는데 그렇게 아름다운 하늘과 별은 태어나 처음 보았다. 아, 이 아름다운 몽골의 평원을 바라볼 마음의 여유가 없었구나, 생각하니 마음이 편해졌다. 마침 코엘류의 소설 ‘연금술사’를 읽고 있었는데 아주 잘 어울리는 책이었다.”
―때로 생각 하나로 지옥과 천국이 바뀌듯 남들에게는 부러운 것이 당사자에게는 질곡이 되는 경우도 있다. 당신에게는 무엇이었나.
그는 “외모”라고 말했다. 뜻밖이었다.
“외모는 나의 성취를 이루는 데 중요한 요인이었지만, 어느 순간 덫이 되었다. 내 인생에서 영화 ‘인정사정 볼 것 없다’와 뒤이은 ‘친구’는 중요한 사건이다. 그때 비로소 연기가 뭐고 영화가 뭔지 알았다. ‘너 같은 외모는 사투리에 안 어울린다’고 말리는 사람도 많았지만 ‘친구’ 대본을 보는 순간, ‘이거다’라고 느꼈다. ‘친구’에 나오는 동수가 가진 비굴함, 2인자 콤플렉스를 연기하면서 카타르시스를 느꼈다.”
―그런 사악한 내면을 연기하면 (정신이) 황폐해지지 않나.
“배우는 영혼과의 씨름이다. 살인자 역할을 하려면, 진짜 살인자의 상상력을 가져야 한다. 그런 역에 몰입했다가 빠져나오기란 어렵다. 배우는 지속적으로 정신과 상담을 받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친구’는 달랐다. 연기를 통해 내 안에 있는 또 다른 나를 발견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을 처음 느꼈다. 태풍의 ‘씬’ 역도 그랬다.”
―당신은 어떻게 빠져나오나.
“여행을 간다. 아무도 나를 알아보지 못하는 곳에 가서 사람들 속을 헤집고 다니며 걷는다. 그러면 배우 장동건이 아니라, 나 장동건으로 다시 돌아온다.”
“요즘은 무극 홍보차 하루에 한 나라씩 돌아다니는 ‘코피 투어’(웃음) 중이라 아무것도 생각할 틈이 없다”던 그의 목소리가 ‘한류’ 이야기로 접어들자 커졌다.
“한국을 보는 눈이 정말 달라졌다. 국운(國運)이 상승하고 있다는 느낌까지 들 정도다. 사람들은 나를 보고 환호하지만, 그것은 장동건의 성취가 아니라 한국의 성취다. 역사 이래 세계인들이 우리의 문화를 이렇게 인정해 주고 심지어 모방하려고 한 적이 있었나. 배용준 한 사람이 일본인들이 가졌던 한국인에 대한 오랜 인식을 바꾸었다. 새삼 대중문화의 힘, 배우의 힘을 느꼈다. 할 일이 많다.”
허문명 기자 angelhu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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