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 부회장이 선물로 만년필을 선택한 이유는 ‘경영진은 기록에 철저해야 한다’는 취지에서다. 만년필은 받는 사람의 성공을 기원하며 책임과 권위도 의미한다.
컴퓨터와 개인휴대정보단말기(PDA)가 일상화된 현대에서도 만년필 시장은 꾸준히 성장하고 있다. 특히 자신만의 개성을 드러내기 위한 아이템이나 명품 이미지를 원하는 젊은 층에서 선호하는 현상이 뚜렷해지고 있다. 입학이나 졸업, 인사 시즌인 연말부터 이듬해 2월 사이에는 판매가 2배 가까이 늘어나기도 한다.
○만년필 시장은 성장중
펜샵코리아 펜카페 항소 등에 따르면 국내 수입 만년필 시장 규모는 500억∼550억 원으로 추산되며 2000년대 들어서도 매년 5∼7%의 성장률을 보이고 있다. 구입하는 이들의 연령도 젊어지고 있다. 예전에는 구매자의 90%가 40대 이상이었으나 3∼4년 전부터는 20, 30대가 30%를 차지하고 있다.
펜샵코리아의 김경숙 팀장은 “자신만의 필기구를 원하는 20, 30대에서 이름을 새긴 만년필이 인기를 끌고 있다”며 “최근에는 중고등학생들도 만년필을 많이 구입하고 있다”고 밝혔다.
펜카페의 박근일 대표는 “30만 원이 넘는 고가 제품을 찾는 고객이 매년 2배가량 증가하고 있다”고 말했다.
○몽블랑이 가장 인기
국내에서 가장 인기 있는 만년필은 독일제인 몽블랑이다. 몽블랑은 만년필 중 명품 이미지가 두드러지는 제품. 펜샵코리아의 판매 제품 중 60%가 몽블랑이다. 펜카페에서는 40%를 차지하고 있다.
국내에서 인기 있는 몽블랑 제품은 1924년 출시된 클래식 스타일의 ‘마이스터스틱’ 라인. 그중 마이스터스틱145(45만 원)와 마이스터스틱146(56만 원)이 많이 팔린다. 최근에는 80만∼100만 원의 고급 제품 ‘마이스터스틱 솔리테어’ 라인에 대한 수요가 늘고 있다.
몽블랑이 2000년 출시한 ‘보헴’은 클립 끝을 모조 사파이어나 루비로 장식해 마이스터스틱보다 밝은 느낌을 줘 20, 30대에게 인기가 높다. ‘보헴’ 라인의 가격은 평균 56만 원.
몽블랑은 매년 ‘예술 후원자 펜’ ‘세계적인 작가를 기념하는 펜’ ‘세계적인 음악가를 기념하는 펜’을 한정 판매하는데 올해에는 각각 교황 율리우스 2세, 세르반테스, 게오르크 솔티가 선정됐다.
프랑스제 워터맨은 10만∼30만 원대 제품들이 많이 팔린다. 워터맨 제품 중 청색 녹색 적색 흑색으로 색상이 다양하고 유선형의 현대적인 디자인을 갖춘 찰스턴(24만 원) 엑스퍼트(18만 원) 헤미스피어(12만5000원) 등이 인기 있다. 최근에는 여성용 만년필로 꽃무늬를 새긴 오다스(12만 원), 립스틱 케이스 모양의 디자인과 실버 골드 적색 청색 연보라색 등 다양한 색상의 이시에라(14만 원)도 판매가 늘고 있다.
미국제인 파카는 저렴한 가격으로 대중적인 인기를 끌어 온 제품. 인기 있는 파카 조터(2만5000원)와 파카45(6만8000원)는 몽블랑이나 워터맨에 비해 저렴한 편. 최근에는 15만 원대인 파카 뉴소네트도 인기를 끌고 있다.
독일제인 펠리칸은 필기감이 부드럽고 잉크 저장량이 많은 게 특징. 펠리칸 M150(6만7000원) M200(12만 원)이 고시생들 사이에서 큰 인기를 얻고 있다.
○하나은행 행장들은 만년필을 대물림
유명 인사들 중에는 몽블랑 만년필 애호가가 많다. 대표적인 몽블랑 애호가는 삼성그룹의 창업자인 고 이병철 회장이다. 이 회장은 몽블랑 만년필을 한꺼번에 수십 개를 구입해 써 보기도 했다고 한다.
정치인 중에서는 한나라당 이재오 원내대표가 몽블랑 만년필을 애용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이 의원은 늘 몽블랑 만년필을 가지고 다니며 잉크도 직접 채워 넣는다고 한다.
소설가 이문열 씨도 서명할 때는 몽블랑 만년필을 사용한다. 이 씨는 소설 ‘오딧세이아 서울’에서 몽블랑 만년필을 주인공으로 등장시키기도 했다.
하나은행에는 전 행장이 신임 행장에게 몽블랑 만년필을 물려 주는 전통이 있다. 이 전통은 윤병철 초대 행장이 중요한 서류에 서명할 때 사용한 만년필을 1997년 김승유(현 하나금융지주 회장) 전 행장에게 물려 주면서 시작됐다. 김 전 행장도 2005년 3월 김종열 현 행장에게 물려줬는데 이 만년필에는 하나은행 역대 행장들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김 전 행장은 충청은행 보람은행 서울은행 인수 계약서에 서명할 때 이 만년필을 사용했다.
외국에서는 엘리자베스 영국 여왕,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존 F 케네디 전 미국 대통령, 미하일 고르바초프 전 구소련 대통령 등이 몽블랑 만년필 애호가로 꼽힌다.
이세형 기자 turtle@donga.com
▼몽블랑 창사 100주년▼
만년필의 명품으로 꼽히는 몽블랑이 올해 창사 100주년을 맞는다.
몽블랑의 역사는 1906년 독일 은행가인 C W 라우젠, 기술자인 W 잔보아, 문구상 C J 휘스가 함부르크 공장에서 ‘심플로’라는 이름으로 만년필을 제조하면서 시작됐다.
이름을 몽블랑으로 바꾼 때는 1910년. 이후 몽블랑은 육각형의 흰 별을 만년필 뚜껑 윗부분에 새겨 넣었다. 흰 별은 알프스 산맥에 있는 몽블랑을 덮고 있는 만년설의 결정체를, 펜촉에 새긴 숫자 ‘4810’은 봉우리의 높이(4810m)를 의미한다.
몽블랑이 명품으로 인정받는 이유는 펜촉의 정교함과 다양성 덕분이다. 펜촉은 지금도 수공으로 제작된다. 18K 금촉은 150여 차례의 공정을 거쳐 만들어진다. 몽블랑에서 생산하는 펜촉은 8가지이며 왼손잡이용 제품도 있다.
몽블랑은 올해 창사 100주년을 기념해 미켈란젤로, 라파엘로 등 예술가를 지원한 교황 율리우스 2세를 ‘예술 후원자 펜’의 주인공으로 선정했다. 출판 400주년을 맞은 돈키호테의 작가 세르반테스는 ‘세계적인 작가를 기념하는 펜’, 런던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수석 지휘자를 지낸 헝가리 출신 게오르크 솔티는 ‘세계적인 음악가를 기념하는 펜’의 주인공.
‘세계적인 작가를 기념하는 펜’과 ‘세계적인 음악가를 기념하는 펜’은 판매 수량에 제한이 없지만 ‘예술 후원자 펜’은 한정 판매된다. 이 펜은 두 종류인데 4810형(250만 원)은 4810개, 888형(700만 원)은 888개만 생산된다. 888형은 다이아몬드나 금 등 고급 재료를 더 많이 사용한다.
몽블랑은 역사적 현장을 지켜보기도 했다. 마이스터스틱은 1990년 10월 3일 서독의 헬무트 콜 총리와 동독의 로타어 데메지에르 총리가 통일 조약서에 서명할 때 사용했다.
몽블랑은 6, 7월경 중국 상하이에서 창사 100주년 기념행사를 연다. 이 행사에는 각국 몽블랑 수집가들이 참석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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