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뷰]낭만 혹은 만화…9일 개봉‘백만장자의 첫사랑’

  • 입력 2006년 2월 9일 03시 0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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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김태균이 누군가. ‘12세 이상 관람 가’ 영화에 있어 발군의 실력을 발휘하는 인물이다. ‘화산고’로 청춘의 감성 표현에 대한 기량을 닦은 그는 2004년 ‘늑대의 유혹’으로 성공을 거뒀다. 기성세대는 “유치하다”는 반응이었지만 10대 관객의 열렬한 호응으로 250만 명이란 흥행 대박을 기록한 것이다. 그런 김 감독이 다시 10대를 노골적으로 겨냥한 영화 ‘백만장자의 첫사랑’을 내놨다. 막무가내로 놀던 재벌 3세(현빈)가 강원도 시골마을에서 만난 불치병 소녀 은환(이연희)과 진정한 사랑을 깨닫게 된다는 내용. 남자 청춘스타와 연기력이 좋은 신인 여배우를 커플로 묶은 점과, 불치병을 끌어들여 눈물샘을 자극하는 전략은 ‘늑대의 유혹’을 빼닮았다.》

이 영화를 한마디로 재단하기란 불가능하다. 10대적 감수성을 낭만, 사랑, 영원이라는 키워드로 꿰뚫고 있는 김 감독의 영화는 보는 이의 감성 연령에 따라 180도 다른 평가가 나오기 때문이다. 더할 나위 없이 로맨틱하고 가슴 절절할 수도, 눈 뜨고 못 봐줄 만큼 유치하고 비현실적일 수도 있단 얘기다.

먼저 이 영화에 흠뻑 빠진 한 10대 소녀의 감성 속으로 들어가 보면….

“아, 멋져! 현빈. 지갑에서 수표 몇 장을 쓱 꺼내 피곤한 듯 던지는 그 모습이란. 할아버지의 유언에 따라 수천억 원의 재산을 상속받기 위해 시골 고교생활을 견뎌야 하는 그의 모습은 잠시 평민의 삶을 재미 삼아 맛보는 왕자님의 모습이야.

현빈은 ‘내 이름은 김삼순’에서 맡았던 ‘삼식이’ 역보다 돈도 더 많고 더 건방진 데다 가슴도 더 뜨거워. 업그레이드된 삼식이랄까. 그가 죽어 가는 은환과 동거를 하면서 팔베개도 해 주며 보살피는 장면은, 사랑하는 이와 둘만의 공간에서 예쁘게 살고 싶은 나의 꿈과 어쩌면 그리 똑같은지.

현빈이 은환에게 던지는 대사는 한 행 한 행이 심금을 울리는 시(詩)야. 그가 ‘너랑 같이 있으면 밤도 낮 같아. 네가 너무 환해서’라고 은환에게 속삭일 땐 숨이 멎는 줄 알았다니까. 현빈이 은환의 하얀 발 위로 털양말을 신겨 주는 장면에선 신데렐라에게 유리 구두를 신겨 주는 왕자님의 모습까지 겹쳐졌어. 내가 영화 속 은환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다음은 영화를 보는 순간부터 불만에 가득 찬 한 30대 아저씨의 마음속으로 들어가면….

“제목부터가 만화야. 사랑 하나 때문에 수천억 원을 포기한다는 게 말이 돼? 게다가 시도 때도 없이 비 쏟아지고 눈 펑펑 오고. 유치한 대사들은 또 뭐야? ‘너무 행복해서 나 지옥 갈 것 같아요’(은환)까지는 참아. 하지만 현빈이 ‘키스할 때 왜 눈을 감는지 알아? 그건 상대가 너무 눈부시기 때문이야’라며 키스할 땐 속이 메스꺼웠어. 아무리 드라마 ‘파리의 연인’과 ‘프라하의 연인’의 작가가 각본을 썼다지만 너무 비현실적 ‘왕자 스토리’ 아니야?

현빈이 잘생긴 건 인정해. 하지만 ‘내 이름은 김삼순’이랑 뭐가 달라? 게다가 이 영화엔 스토리라는 게 없어. 중반 이후엔 무조건 울리려고만 들어. 발라드 가사 같은 대사를 죽도록 반복하면서 관객이 울 때까지 지루하게 밀어붙이잖아. 이게 신파가 아니면 뭐가 신파야?

이 영화에서 하나 건질 거라곤 은환으로 나오는 이연희란 배우야. 영화엔 처음 나오는 신인 같은데 연기는 현빈 뺨치게 잘하네. 생긋 웃는 모습이 언뜻 청순한 듯하면서도 노련한 맛이 숨어 있는 게 일품이야. 아, 지금이라도 내가 10대로 돌아갈 수만 있다면….” 9일 개봉. 12세 이상.

이승재 기자 sjd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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