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 다른 점은 미혼 남성들뿐 아니라 기혼 남성들도 ‘친절한 남자로의 변신’에 가세한다는 것이다. 일본에서 밸런타인데이 초콜릿은 사랑하는 사람에게만 건네는 선물이 아니다. 평소 호의를 느낄 만한 사이라면 직장 상사나 동료에게도 초콜릿을 선물한다.》
밸런타인데이에 초콜릿 하나 받지 못한 남성은 대인 관계에 심각한 문제가 있는지 되돌아보지 않으면 안 된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남성들이 몸에 배지 않은 친절이나마 열심히 베풀어 보려고 하는 것은 그런 이유에서다.
선물을 하는 여성들에게 최대의 문제는 비용이다.
초콜릿을 주지 않으면 섭섭해할지 모르는 사람들을 빠짐없이 챙기려면 아무래도 주머니가 홀쭉해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일본의 상술(商術)이 어떤가. 밸런타인데이를 초콜릿 판촉 시즌으로 만들어 놓은 게 바로 일본의 상술 아닌가.
여성들의 이런 고민쯤은 가볍게 해결해 주고 남는다. 해법은 차별화다.
일본의 초콜릿 가게에 들어가면 진열공간부터 ‘혼메이(本命)용’과 ‘기리(義理)용’이 구분돼 있다. 우리말로 혼메이는 애인, 기리는 인사치레라는 뜻이다.
일본의 초콜릿 선물 풍속도를 격주간지인 도쿄파노라마의 여론조사 결과를 통해 살펴보자.
우선 올해 ‘초콜릿 선물 계획이 있느냐’는 질문에는 91%가 ‘그렇다’고 응답했다.
‘사랑을 고백하고 싶은 사람이 있어서’ ‘감사의 기분을 전할 기회이기 때문에’ ‘초콜릿을 고르는 것이 즐거워서’ ‘인사치레지만 기대하고 있는 직장상사나 동료를 배신할 수 없어서’ 등이 그 이유였다.
애인용이냐, 인사치레용이냐는 질문에 대해서는 16%가 애인용, 24%가 인사치레용이라고 답했다. 두 쪽 모두라는 응답은 60%였다.
사려는 초콜릿의 가격을 보면 둘 사이의 대비가 두드러진다.
인사치레용은 500엔 미만이 40%, 500엔 이상∼1000엔 미만이 42%였다. 1000엔 미만이 전체의 82%를 차지한 것.
이에 비해 애인용은 1000엔 이상∼3000엔 미만이 57%로 가장 많았고 3000엔 이상∼5000엔 미만이 15%였다. 1만 엔 이상이라는 사람도 6%나 있었다.
인사치레용 초콜릿을 선물하는 대상으로는 직장상사 동료 후배가 94명, 가족이 32명, 친구가 21명, 기타가 3명 등이었다.
인사치레용 초콜릿을 몇 개나 선물하느냐는 질문에 대해서는 1, 2개 16%, 3∼5개 36%,6∼10개 24%, 11∼20개 18%, 21개 이상 6% 등의 응답이 나왔다.
일본의 밸런타인데이 풍속도가 얼마나 요란한지는 소비자 쪽보다 공급자 쪽에서 더 쉽게 확인된다.
도쿄의 한 보석장식품 수입회사는 다이아몬드 2006개가 장식돼 있는 초콜릿을 지난달 24일 판매용으로 내놨다.
세금을 포함한 판매가격은 무려 5억 엔.
가로 40cm, 두께 4cm에 아프리카 대륙 모양을 한 이 초콜릿의 원료는 벨기에산 고급 초콜릿 12kg.
이 회사 관계자는 “아마 세상에서 가장 비싼 초콜릿일 것”이라면서 “이 초콜릿을 사는 사람이 원하는 장소에 배달해 줄 계획”이라고 말했다.
일본 내 최고 매출액을 자랑하는 이세탄백화점 신주쿠 본점은 지난달 초콜릿 제전 ‘살롱 드 쇼콜라’를 열었다.
프랑스 벨기에 독일 등 11개국 55개 유명 초콜릿 브랜드가 신상품을 전시한 이 행사에는 높이 70cm에 이르는 초콜릿제 천사상과 초콜릿 부조로 재현한 모나리자, 초콜릿으로 만든 일본의 풍속화 등이 선을 보였다.
이 밖에도 크고 작은 이벤트들이 줄을 잇고 있으며 올해는 특히 콩가루 가루차 식초 소주 등 일본의 전통적인 재료를 사용한 초콜릿 상품이 많이 나와 눈길을 끌고 있다.
한편 일본에서 밸런타인데이에 초콜릿을 선물하는 전통은 고베의 한 서양과자점이 1936년 일본 영자잡지에 ‘밸런타인 초콜릿’이라는 광고를 낸 데서 시작됐다.
이세탄백화점은 1958년 밸런타인데이에 초콜릿 세일이라는 판촉행사를 벌였으나 고작 3개밖에 팔리지 않았다. 지금은 일본 내 초콜릿 연간 소비량의 4분의 1이 밸런타인데이 하루 동안 팔린다고 한다.
도쿄=천광암 특파원 ia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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