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죽하면 북극은 인간을 1000가지 방법으로 죽일 수 있다고 잭 던던이 말했겠는가. 동상쯤은 아무것도 아니다. 얼음에서 새어나오는 교활한 물은 덫사냥꾼의 목숨을 앗아갈 수 있다. 지나치게 무리를 하다가는 자기가 흘린 땀에 얼어 죽을 수도 있다. 굶주림, 설맹(雪盲), 폐소공포증 등 언제나 죽음은 곁에 상존해 있다.”
덫사냥꾼 하이모 코스. 그가 사는 알래스카 내륙지역은 지도 밖의 공간이다. 광활한 공간에 울퉁불퉁 솟아 있는 눈 덮인 봉우리들에는 이름조차 없다. 그는 이곳에서 덫을 놓아 담비, 오소리, 늑대 등을 잡아 자급자족을 하며 살아간다.
하이모는 20대였던 1975년 고향인 위스콘신을 떠나 처음으로 이 미지의 땅에 발을 들여놓았다. 배관공이 돼 평범한 삶을 살길 바랐던 아버지의 뜻을 거역한 채 쳇바퀴 도는 것 같은 일상을 뒤로하고 30여 년 동안 대자연의 품에 묻혀 지내 왔다.
그러나 알래스카는 그에게 견딜 수 없는 비극적인 경험을 던져 주었다. 굶주림과 탈진으로 지쳐 죽음을 기다리다가 항공기에 구조되기도 하고, 강물에서 카누가 뒤집혀 사랑하는 딸을 잃기도 했다. 그러나 이렇게 아름답고도 황폐한 땅에서 겪는 비극은 오히려 그를 영원히 이곳에 묶어 두는 힘이 됐다.
하이모의 사촌동생이자 기자 출신인 저자는 계절이 바뀔 때마다 한 달씩 알래스카를 찾아 하이모와 에스키모 아내 에드나, 두 딸 론다와 크린의 생활을 2년간 기록했다. 밤이면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트랩라인으로 보내는 소식’에 귀를 기울이는 모습, 생필품을 실어다 주는 임시 운항 비행기를 몇 달 동안 대책 없이 기다리는 모습, 스스로 터득한 사냥술과 생존술에 의존해 무서운 자연과 싸워 온 수년간의 모습이 생생하게 묘사된다. 아버지를 거역하고 거친 자연으로 온 하이모는 거꾸로 ‘문명세계’를 꿈꾸는 10대인 두 딸의 미래에 대해 깊은 고민을 한다.
황무지를 개척해 온 ‘아메리칸 드림’의 소박한 상징처럼 보이는 하이모 가족의 삶은 때로 유쾌하고 때로는 슬프다. 하지만 늘 흥미진진하다. 또한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급자족의 의미, 지구온난화로 극심한 기후 변화를 겪는 북극권의 환경보호주의를 둘러싼 쟁점들을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한다.
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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