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 리모델링]<5>목표의 재구성

  • 입력 2006년 2월 13일 03시 0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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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 서구 만년동에 사는 주부 임모(42) 씨는 두 달 전 시아버지상을 당한 뒤 홀로 남은 시어머니의 모습을 보고 부부가 좋은 모습으로 함께 늙어 가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중매결혼해 4남매를 낳은 임 씨의 시어머니는 남편이 젊은 시절 외도를 한 데다 사사건건 서로 못마땅하게 여기며 칠순이 넘도록 냉랭하게 살아 남편이 암으로 고통스러운 죽음을 맞는 순간조차 남의 일처럼 차갑게 대했기 때문이다. 임 씨는 “부부가 함께 살다 보면 미운 정 고운 정 든다고들 하지만 단순하게 오래 함께 산다고 정이 커지고 행복하게 늙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절감했다”고 말했다.》

○ 단순히 함께 오래 사는 게 행복인가

K대 윤모(56·서울 강동구 둔촌동) 교수와 부인 황모(51) 씨는 이웃 사이에서 ‘스포츠 부부’로 통하며 부러움을 산다. 부부가 함께 수영을 다니고 시외로 자전거하이킹을 즐기며 주말에는 등산을 다니면서 부부 금실을 다지기 때문이다.

이 부부가 함께 운동을 시작한 것은 10여 년 전. 남편이 미국에서 2년간 교환교수로 있을 때 뭐든 함께하며 행복한 노년을 즐기는 미국 부부들의 모습을 보면서 부부가 함께 노후를 보낼 공통분모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황 씨는 “40세 즈음해 우리 부부의 인생을 되돌아보니 자식들이 다 자라면 결국 우리만 남게 되는데 그때 함께할 무엇인가를 만들어 놓지 않으면 남은 인생을 무료하게 보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앞으로도 남편과 함께 스포츠댄스도 배우고 능력만 된다면 철인3종 경기에도 도전해 볼 생각”이라고 말했다.

포털사이트에서 부부 문제 등을 상담해 오면서 상담사례집 ‘그래 내가 사랑한다’를 펴낸 여성문제 상담전문가 김영주 씨는 “장밋빛 꿈을 안고 결혼생활을 시작한 부부가 생활스타일의 차이로 갈등을 빚기도 하고 경제적인 문제로 고민도 하다 생활의 안정을 찾게 되면서 삶의 목표를 다시 점검하게 되는 시기가 40대”라고 진단했다.

김 씨는 “일상생활 속에서 부부의 삶이 어떤 현실적인 목표를 추구하는가는 결국 인생에서 무엇이 소중하다고 생각하는가 하는 부부의 가치관과 직결된다”고 말했다.

김 씨의 상담경험에 따르면 요즘 부부들 사이에 삶의 목표와 가치관을 둘러싸고 흔히 충돌을 빚는 것은 경제 문제를 둘러싼 가치관의 차이다.

근검절약을 강조하며 휴일도 라면 수준의 별식으로 때우고 “하루빨리 내 집 마련을 하자, 경제적인 기반을 잡자”는 남편과, 주말은 아이들과 외식도 하고 나들이도 즐기며 “오늘 하루라도 즐기며 살아 보자”는 아내의 욕구가 충돌하는 일이 가장 많다는 것.

결혼이 무엇인가에 대한 부부의 인식 차이에서 오는 갈등도 크다. 남편은 자신의 친가와 조화를 이루며 가정을 잘 꾸리는 것이 결혼의 목적이라고 생각하는 반면 아내는 별개의 가족으로 독립해서 행복한 가정을 꾸리는 것을 결혼의 목적이라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내 집 마련을 함께하는 가정경제 운영의 파트너로, 아이 양육을 함께하는 공동 양육자로 살아 온 부부들은 현실적인 욕구가 어느 정도 충족된 다음 삶의 질에 대한 욕구가 일어나는 40대가 되면 비로소 자기 자신에게 눈을 돌리게 되는 여유가 생기게 된다.

김 씨는 “한쪽 배우자가 사랑과 관심을 갈구하는데 다른 쪽에서는 ‘그게 뭐 별거냐’라고 나올 때 갈등이 생길 수밖에 없고 결국 부부 사이에서 애정에 대한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하면 외도로 이어지게 된다”며 “이것이 요즘 우리 사회에서 40대 이상의 외도, 특히 여성의 외도가 급증하고 결국 ‘황혼 이혼’으로까지 이어지게 되는 이유”라고 설명했다.

○ “가정에서 작은 즐거움 찾는 게 행복”

지난해 발표된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50대 이상 연령대에서 결혼한 지 20년 이상 된 부부가 갈라서는 황혼 이혼은 1981년에는 전체 이혼의 4.8%에서 2004년 18.3%로 20여 년 사이 4배 늘어났다. 단지 오래 살았다고 부부 사이에 내재된 문제가 그냥 갈무리되지 않는 것이다.

행복가정재단 김병후 이사장은 “과거 부부의 삶의 목표가 잘사는 것이었다면 생활수준이 높아진 현대사회에서의 목표는 행복하게 사는 것”이라며 “가정 안에서 매일 느낄 수 있는 소소한 즐거움을 찾는 것이야말로 부부가 가질 수 있는 가장 큰 행복이고 이것이 결혼한 부부의 진정한 삶의 목표여야 한다”고 말했다.

‘마흔으로 산다는 것’의 저자 전경일 씨는 “사고의 유연성이 떨어지는 남성들이 각박한 사회에서 생존을 강요당하며 가장으로서의 책임감에 눌려 감정을 억누르고 사는 데 익숙하다 보니 아내가 애정 표현을 절실하게 필요로 할 때 그조차 할 줄 모르게 됐다”고 말했다.

전 씨는 “우리나라 대부분의 중년 남자들은 마흔이 넘어서야 정서적인 낙오자가 된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며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는 생각으로 부부가 서로의 삶을 공유하는 폭을 넓힐 때 인생의 마지막 반려자인 부부의 삶을 충만하게 만들 수 있다”고 말했다.

박경아 사외기자 kapark0508@hotmail.com

▼전문가 시각▼

우리 가족은 단독주택에서 17년간 살다 보니 여러 번 리모델링 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부부 치료에 관한 책을 쓰면서 ‘부부 사이에도 리모델링이 필요하다’라는 제목을 붙인 것도 집을 리모델링 하면서 겪었던 크고 작은 시행착오에서 얻은 힌트입니다.

부부 리모델링을 제대로 하려면 먼저 정확한 진단이 필요합니다. 커튼이나 벽지 등을 바꾸는 정도인지, 베란다나 부엌 개조인지, 아니면 벽에 금이 가거나 축대가 붕괴될 위험이 있는 심각한 문제인지 등을 꼼꼼히 살펴야 합니다.

부부 사이가 심각할 때 어떤 조짐이 보일까요? 존 가트먼 박사의 연구에 따르면 비난, 경멸, 방어와 담 쌓기는 이혼으로 가는 지름길이라고 합니다. 비난이란 “당신은 도대체 왜 이래?”, “당신은 항상, 절대로, 한번도…” 식의 말투로 상대에게 성격적 결함이 있다는 뜻을 함축합니다. 경멸은 비난보다 한층 독성이 강합니다. “어쭈”, “야, 뚱보야”, “너나 잘하세요” 식의 비아냥거림은 자신이 상대보다 우월하다는 태도에서 나옵니다.

비난과 경멸을 받으면 상대는 방어적으로 나옵니다. “그러는 넌 도대체 얼마나 잘했는데?”, “너 때문에 일이 이렇게 꼬였다는 걸 몰라?” 끝으로 비난, 경멸, 방어에 지친 부부들은 담 쌓기를 합니다. 상대가 말하는데 신문만 보기, 말 도중에 휙 나가 버리기, 전화기 꺼 놓기, 집에 늦게 들어가거나 안 들어가기 등은 모두 담 쌓기 행동입니다.

가트먼 박사는 비난, 경멸, 방어, 담 쌓기를 자주 하는 부부들은 92%의 정확도로 이혼을 예측할 수 있다고 합니다.

저는 이 4개의 행동이 부부 사이에 극심한 불행감을 불러오고 이혼 위기를 초래하는 이유가 정서 통장을 고갈시키기 때문으로 이해합니다. 정서 통장이란 무엇일까요?

수입과 지출의 재정 통장이 있듯 부부 사이에는 정서 통장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행동과 감정으로 보고 느낄 수 있지요. 정서 통장이 고갈될 때 흔히 짜증, 열등감, 우울증, 적개심, 불안감을 느낍니다.

정서 통장을 채우는 방법은 의외로 간단합니다. 장점 찾기, 서로 반갑게 맞아 주기, 인생의 꿈을 들어 주고 이루도록 배려해 주기 등은 모두 정서 통장을 채워 주는 행동입니다. 이렇게 하는 데 하루 3분만 할애해도 부부관계가 눈에 띄게 좋아지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것저것 기억하기 어렵다면 하루에 단 세 마디 말만이라도 자주 해 봅시다. 고맙다, 미안하다, 사랑한다.

최성애 ‘부부 사이에도 리모델링이 필요하다’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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