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5일 동아일보 신춘문예 시상식장에서도 비슷한 경험을 했다. 가야금 4중주단 ‘여울’이 황병기 이화여대 명예교수가 클래식 곡을 편곡한 ‘산책’과 보사노바 풍의 재즈곡 ‘Fly me to the moon’을 연주하자 문화계 인사들은 “무척 신선하고 강렬한 인상”이라는 반응을 보였다.
영화평론가 전찬일 씨는 “그동안 전통음악을 무겁게 느껴 왔는데 톡톡 튀는 경쾌한 가야금 소리에 국악을 새롭게 보게 됐다”고 말했다.
요즘 국악계에서는 ‘슬기둥’ 이후 ‘푸리’ ‘공명’ ‘여울’ ‘사계’ ‘The林’ ‘바이날로그’ 등 젊은 국악인들의 다양한 실내악 공연이 붐을 이루고 있다.
이 같은 실내악 공연팀들은 서울 서초동 국립국악원 예악당이나 우면당, 장충동 국립극장 같은 대형 극장을 선호하지 않는다. 장소 자체가 접근성이 떨어지는 데다 젊은이들이 잘 찾지 않기 때문. 그래서 음향 시설은 떨어지더라도 차라리 대학로의 소극장에서 젊은 관객들을 만나려고 한다.
국악평론가 윤중강 씨는 “우리의 전통음악 자체가 정자나 사랑방에서 연주하던 것이기 때문에 악기의 음량이 서양악기에 비해 작다”며 “마이크 시설 없이도 관객들과 소통하기 위해서는 소극장이 훨씬 관객과 소통하기에 좋다”고 말했다.
‘여울’은 지난해 이화여대 대강당에서 공연하면서 음량 때문에 고민하다가 소리를 증폭할 수 있는 일렉트릭 가야금을 자체 개발했다. 또한 대중가요 전용 콘서트홀이나 홍익대 앞 클럽에서 공연하는 국악팀들은 미세한 국악기의 음량을 전달해 줄 마이크 시스템과 전문 인력 부족으로 곤란을 겪고 있다. 국악에 어울리는 전용 소극장의 부재(不在)가 어쩔 수 없이 국악기의 퓨전화, 전자악기화를 재촉하고 있는 셈이다.
이런 상황에서 3일 서울 종로 국악로에 민간단체인 한국창극원이 국악전용 공연장인 ‘한국음악홀’을 열었다는 소식은 무척 반갑다. 넓은 대청마루형 무대와 객석은 추임새와 장단 등 객석과의 호흡이 중요한 국악 공연장과 잘 어울렸다.
그러나 재정적으로 탄탄하지 않은 민간단체들이 국악 전용홀을 만들고 운영한다는 것은 대단한 모험이 아닐 수 없다. 2007년 7월 남산골 한옥마을에도 300석 규모의 전통음악 공연장이 생긴다고 한다.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의 시청홀에서 밤이면 의자를 갖다 놓고 1년 내내 모차르트 음악을 연주하는 것처럼 우리도 언제나 ‘그곳’을 찾아가면 만날 수 있는 국악음악회가 필요하다.
영화 ‘왕의 남자’에서 전국 8도의 광대들이 모여 판을 벌이듯 명인들도, 또랑광대들도, 퓨전 국악인들도 자유롭게 끼를 분출할 수 있는 마당이 여럿 생겨나면 좋겠다.
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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