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1세대 미술평론가의 미수 기념 논총 ‘한국 현대미술의 단층’(삶과 꿈)이 나온 10일 이곳을 찾았을 때 열린 방문 사이로 휠체어에 앉은 그의 모습이 보였다. 환기미술관 박미정 관장도 마침 와 있었다. 미수 기념으로 4월에 열리는 ‘우정의 가교-김환기, 이경성’전을 의논하기 위해서다.
“아마추어와 최고 화가가 함께하는 전시가 되겠지. 난 20세기 인물이잖아. 이번에 미수 하고 내 할일 다하고 죽으면 깨끗할 거야.”
그는 2001년 교통사고 후유증으로 거동이 불편했지만 조금 어눌한 것 말고는 의사소통에 큰 지장은 없었다. 옅은 소독약 냄새가 배어 있는 방 안에는 1인용 침대와 비키니 옷장, 사별한 아내와 미국에 사는 외동딸 가족의 사진이 이웃하고 있었다. 벽에는 추사 김정희의 글씨 탁본 ‘시경(詩境)’이 걸려 있었다.
“굉장히 오래된 탁본이야. 하얀 종이가 40년 동안 완전히 노란색으로 변했잖아. 시간의 때, 세월의 역사가 묻어 있단 말이지.”
추사의 글씨처럼, 사람도 시간의 때가 묻으면 좋은 것일까.
“좋은 사람도 있고 나쁜 사람도 있는 거지. 나야 모르지. 돈도 못 벌고….”(이경성 씨)
“선생님은 사람을 버셨잖아요.”(박미정 관장)
이곳의 생활비는 그를 아끼는 사람들과 제자들의 후원금으로 충당하고 있다.
“학생들이 나보고 왜 가난하냐고 물어. 근데 공수래 공수거야. 사실 웬만한 화가들 작품은 다 갖고 있었는데 그냥 주기도 하고 가난할 때 팔기도 했어. 돈에 대해 생각 안 해. 난 그림이 돈으로 안 보이거든. 죽을 때 난 묵주하고 콧수건(알레르기 때문에)만 가져갈 거야(웃음).”
“시력이 약해져 책은 잘 못 읽어. 대신 낙서처럼 늘 그림을 그려.”
방 앞 복도엔 물감과 종이가 펼쳐져 있었다. 청심환 빈 약통에도 사인펜으로 유희처럼 여자 얼굴을 그려놓았다. 평론가로, 미술행정가로 지내면서 그는 자연스레 그림을 즐기게 됐고 몇 차례 전시회도 열었다. 복도의 간이 화실은 살면서 그가 가장 소중하게 여긴 것은 미술이었음을 일깨워주는 풍경이었다.
그가 오랜만에 바깥나들이를 한다. 15일 오후 5시 서울 종로구 관훈동 모란갤러리에서 열리는 기념논총 출판기념회장. 여기서 제1회 석남미술이론상, 석남젊은이론가상 시상식도 치러지며 제25회 석남미술상을 수상한 한국화가 우종택 씨의 전시회(15∼21일)도 열린다. 02-737-0057
고미석 기자 mskoh11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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