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재기자의 무비홀릭]영상미로 본 ‘게이샤의 추억’

  • 입력 2006년 2월 16일 02시 59분


때론 아름다운 것만으로도 용서가 되는 영화가 있다. ‘게이샤의 추억’(2일 개봉)이 그러하다. 이 영화는 비록 서양인들이 상상하고 기대하는 동양의 모습을 담은 ‘오리엔탈리즘’의 색채가 짙지만, 스크린을 쳐다보는 것만으로도 강렬한 미적 체험을 안겨준다. 게이샤의 운명과 사랑을 담은 이 영화에서 가장 매혹적이라고 여겨지는 7개의 세부 장면을 포착했다.

① 어린 치요(주인공 장쯔이)가 훔쳐보자 표독스러운 게이샤 하쓰모모가 휙 고개를 돌려 쏘아보는 순간=뽐냄과 자존감, 약간의 두려움, 덩어리진 성욕(性慾)까지 한데 모인 습기 찬 그녀의 눈빛. 그리고 동물적인 질투심이 집약된 헐벗은 얼굴선.

② 치요가 당대 최고의 게이샤인 마메하(양쯔충·楊紫瓊)의 방을 향해 다가가는 뒷모습=쏟아지는 빛 속으로 빨려가는 듯한 치요의 실루엣. 마치 밝고 따스한 자궁 속으로 회귀하는 것만 같다. 마메하가 치요를 최고의 게이샤가 되도록 가르칠 ‘엄마’ 같은 존재가 될 거란 사실을 이미지로 암시하는 대목.

③ 목을 단장하는 사유리(게이샤가 된 치요의 새 이름)=게이샤가 되기 위해 뒷목에 하얗게 분을 바르며 조심스레 단장하는 순간. 사유리의 목덜미를 비추는 거울이 독특한 조형미를 빚어낸다.

④ 게이샤로 첫발을 딛는 사유리의 버선발=고관대작들의 술자리에 ‘데뷔’하기 위해 처소를 나서는 사유리. 그녀가 게다(일본식 나막신)에다 버선발을 쏙 집어넣었다. 아, 미지의 세계에 대한 두려움과 설렘이 동시에 스며 있는 앙증맞은 버선은 씹어주고 싶다.

⑤ 일본식 정원=공원으로 나들이 간 사유리 앞에 펼쳐지는 일본식 정원. 겉으론 정물화처럼 단아하지만 속으론 어딘지 인공적이고 질식할 듯한 일본의 이중성이 투사된….

⑥ 차(茶) 주전자 손잡이를 잡은 사유리의 손=손끝과 손목이 만들어 내는 섬세하고 조심스럽고 유연한 선(線). 마치 부리로 나뭇가지를 살짝 집은 학처럼 살아 움직이는 실루엣.

⑦ 귓불에 분칠을 하는 사유리=귓불을 살짝 건드리는 화장 붓의 움직임은 매우 탐미적인 애무(愛撫) 행위의 표상. 귓불에서 꽃잎처럼 떨어져 내리는 미세한 분 입자들에선 사유리가 품은 사랑의 정념이 알알이 묻어난다.

이승재기자 sjd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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