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의 정신사마저 잿더미로 만든 제2차 세계대전의 기억이 희미해져 가는 가운데 세계는 그렇게 새로운 염원과 욕망, 새로운 혼돈에 몸을 던졌다. 그 1966년에 계간 ‘창작과 비평’이 창간됐다. ‘창비’와 동갑내기인 66년생들은 올해 만 마흔 살이 되었다.
어느 세대엔들 ‘성난 얼굴로 돌아보지 않을’ 20대가 있을까. ‘창비’의 스무 살 언저리도, 66년생들의 20대도 거칠었다. 1980년 신군부 등장과 함께 강제 폐간됐다가 1988년 복간되기까지 ‘창비’는 서가에 조용히 꽂혀 있지 못했다.
‘창비’ 읽기를 하며 20대를 시작한 66년생들은 ‘해방전후사의 인식’ 등을 함께 탐독하며 스무 살 이전에 알았던 모든 것을 지워 내려 애썼다. 자신들이 태어난 해의 그 설레던 기운처럼, 새롭게 안 지식으로 세상을 서둘러 바꾸는 일에도 두려움이 없었다.
그러나 2006년 봄호로 창간 40주년을 기념한 ‘창비’가 내놓은 선언은 “이미 주류문화의 일부가 되기도 한 창비 편집진부터 타성을 떨치겠다”는 것이다. 나이가 훈장이라도 되듯 정치권부터 사회 전반에 이르기까지 ‘40대 주류론’이 공공연한 지금, ‘창비’의 주류 탈피론은 새삼 그 창간사를 떠올리게 한다. ‘창조와 저항의 자세를 가다듬는 거점이 되겠다’고 했던 창간 정신이 ‘주류 편입’이 되는 것이 마흔 살 성숙의 의미는 아니라는 자각이리라. ‘창비’와 같은 시기에 태어나 한때 그 세례를 받고 성장한 40대도 아직 삶에서 배워야 할 것이 너무 많다.
세월이 변화시키는 게 있기는 하다. 원고지 시대에 태어난 ‘창비’는 창간 40주년 기념 부록으로 시인들이 직접 자작시를 낭송한 동영상 CD를 독자들에게 선물했다. 옆구리에 끼고 다니던 ‘창비’ 시선(詩選)이 매끈한 디지털이 되었지만 그렇다고 그 파릇하던 다짐의 빛마저 바래지는 않았다.
‘기다리지 않아도 오고 기다림마저 잃었을 때에도 너는 온다/어디 뻘밭 구석이거나 썩은 물웅덩이 같은 데를 기웃거리다가/한눈 좀 팔고 싸움도 한판 하고/지쳐 나자빠져 있다가/다급한 사연 듣고 달려간 바람이 흔들어 깨우면 눈 부비며 너는 더디게 온다/더디게 더디게 마침내 올 것이 온다…./’( 이성부 시인의 ‘봄’ 중)
정은령 문화부 차장 ry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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