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에서 우주의 시간단위인 ‘1겁(eon)’은 432만 년이다. 아이슬란드 서사시 ‘에다’의 오딘의 성(城)에는 540개의 문이 있고, 지상 최후의 날에 800명의 전사가 신에 대항하는 자들과 싸우기 위해 그 문을 지나간다. 540에 800을 곱하면 43만2000이다. 기원전 289년 베로소스의 바빌로니아 역사에 따르면 메소포타미아인들은 첫 번째 대지의 왕이 즉위한 뒤 대홍수가 일어나기까지의 시간이 43만2000년이라고 믿었다. 이건 단지 우연일까. 서로 멀리 떨어져 있는 문화권의 신화와 의례에서 비슷한 구조나 똑같은 모티브가 광범위하게 나타나는 것은 왜일까. 그것은 서로 다른 하늘 아래 살고 있는 인간 정신의 유사한 구조, 동일한 심리적 원형에서 비롯되는 것일까.》
‘432’라는 신화적 수는 수세기에 걸친 ‘하늘의 관찰’과 관련이 있다. 오늘날에는 춘분에 태양이 물고기자리에 위치하지만 예수가 살던 시기에는 양자리에 있었다. 그 2000년 전에는 황소자리에 있었다. 72년에 1도씩, 너무나 느려서 감지하기조차 힘든 ‘춘분점 세차(歲差)’. 세차운동이 한 바퀴 돌아 모든 행성이 회전을 끝내는 ‘황도대의 주기’를 채우려면 2만5920년이 걸린다. 그것을 메소포타미아 60진법으로 나누면 432가 된다.
이 책은 현란할 만큼 다양하게 펼쳐지는 세계 신화의 스펙트럼 속에서 인류의 정신사적 통일성을 더듬는다. 그 통일성 위에서 세계의 모든 종교와 신화는 동등하다. 모든 신화는 인류의 위대한 한 가지 이야기, 단일신화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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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최고의 신화해설가, 비교신화학자로 불리는 저자. 이 책은 “신화는 당신이 걸려 넘어지는 곳에 당신의 보물이 있음을 알려 준다”는 그의 전 생애에 걸친 신화 연구의 결정판이다.
그는 꿈을 통해 신화를 향한 문을 연다. 꿈이 무의식적 내면세계에서 떠오르듯 신화도 마찬가지다. “신화의 진정한 의미는 상징이다. 신화는 개념체계에서 오는 게 아니라 삶의 원천에서 솟구친다. 마음이 거처하는 곳에서 흘러나온다. 신화는 사실이 아니라 그 너머를 가리킨다.” 그래서 그는 굳이 논증하거나 설명하려 들지 않는다. 시각예술(도판)을 매개로 언어가 떠난 자리에서 이야기는 더 깊은 울림을 남긴다.
이 책에서 신약과 구약성서는 하나의 신화로서, 그리고 인류의 수많은 신화 속에서, 풍요롭고 아름다운 텍스트로 되살아난다.
예컨대 현대인들이 문자 그대로 받아들이기 힘든 성육신의 교리는 예수라는 한 사람 속에 신과 인간이 공존하고 있음을, 신은 도처에 있으며 당신 안에 있음을 상징하는 신화적 테마로 재해석된다. “하늘의 왕국은 네 안에 있고, 네 밖에도 있다.”(도마복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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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성모’(위 사진①) 또한 신들과 정령은 우리 안에 있음을 웅변하는 전설적이고 신화적인 이미지로 모습을 나타낸다. 그리고 ‘열리는 성모상’(사진②)에서 이브가 따먹었던 죄악의 사과(‘세계의 사과’)를 들고 있는 성모는 마침내 세계와 신의 지평으로서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다(사진③).
기독교적 메시지의 상징들은 이렇듯 시적이고 신비롭고 영적인 의미를 통해 인류가 지닌 다른 신화적 전통의 상징들과 일치점을 찾아간다.
일찍이 토마스 만은 그의 신화 4부작 ‘요셉과 그 형제들’에서 ‘달의 문법’이라는 신조어를 통해 신화적 사고와 그 의사소통의 질서에 대한 깊은 통찰을 보여 주었다. “한낮의 빛과 달빛은 다르다. 사물들은 달빛 아래에서 볼 때와 태양 아래서 볼 때 서로 다르게 보인다. 성령에게는 달빛이 좀 더 진실한 빛을 만들어 내는 것처럼 보일 것이다….”
원제 ‘The Mythic Image’(1974년).
이기우 문화전문기자 keywo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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