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2년 2월 21일 새벽. 지구 건너편 프랑스 알베르빌에서 전해진 소식에 국민은 잠을 설쳤다.
한국이 동계올림픽에 처음 참가한 것은 1948년 스위스 생모리츠 대회. 44년 만에 첫 금메달이 나왔으니 그 감격이란….
김기훈은 이날 남자 쇼트트랙 1000m 경기에서 금메달을 따 내고 이틀 뒤 남자 5000m 계주에서 드라마틱한 역전 승리로 한국에 다시 금메달을 안겼다.
당시 그가 구사했던 기술이 그 유명한 ‘스케이트 날 밀어 넣기’. 결승선을 앞두고 캐나다 선수에게 반걸음 뒤져 있던 김기훈은 다리를 쭉 뻗고 스케이트 날을 먼저 밀어 넣어 금메달을 낚아챘다. 2위와 0.04초 차이의 아슬아슬한 승부였다.
이 기술은 이후 한국 쇼트트랙 선수단의 ‘비장의 무기’가 됐다. 1998년 일본 나가노(長野) 대회에서도 김동성과 전이경이 이 기술로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김기훈은 독창적인 기술 개발로 세계 정상에 올라선 선수다. 개인코치 역할을 한 아버지와 함께 고안했다는 ‘호리병 활주’와 ‘외발주법’도 유명하다.
‘호리병 활주’는 출발 직후 트랙 안쪽을 차지한 뒤 호리병 모양의 곡선을 그리며 달려 뒤따라오는 선수의 추격을 막는 기술. ‘외발주법’은 곡선 주로에서 양발을 다 쓰는 대신 외발로만 코너를 빠져나가 뒤따라오는 선수의 추월 타이밍을 빼앗는 것이다.
김기훈은 1994년 노르웨이 릴레함메르 대회에서도 1000m 우승을 차지해 아시아인 최초로 동계올림픽을 2연패하는 등 오랫동안 세계 최강의 자리를 지켰다. 동계올림픽은 1992년까지는 하계올림픽이 열리는 해에 열렸으나 1994년부터 하계올림픽과 2년 간격으로 열린다.
한국 쇼트트랙 1세대로 후배들을 이끈 그는 외국 선수들에게도 우상이었다.
2002년 미국 솔트레이크시티 대회에서 ‘할리우드 액션’으로 국내 팬의 비난을 받은 미국의 아폴로 안톤 오노는 지난해 한국을 방문했을 때 “김기훈의 스케이트 타는 모습에 반해 아버지에게 스케이트를 사 달라고 졸랐다”고 털어놨다.
26일까지 계속되는 이번 토리노 동계올림픽에서 한국 쇼트트랙 선수들의 승전보를 다시 한번 기대해 본다.
김상수 기자 ssoo@donga.com
구독
구독
구독
댓글 0